윤씨는 이날 오후 지난 10여 년간 앓던 알츠하이머병으로 숨을 거뒀다.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대 영문학과 재학 중 신인 오디션에서 1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그해 대종영화제 신인상, 청룡영화제 인기 여우상 등을 휩쓸며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데뷔 이후 7년 동안에만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윤씨는 문희, 남정임과 함께 ‘충무로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안개’ ‘장군의 수염’ ‘독 짓는 늙은이’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청룡영화제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994년 ‘만무방’ 이후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그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복귀했다. 이 작품은 배우로서 마지막 영화가 됐다. 이 영화로 그는 2011년 LA비평가협회와 시네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배우자는 유명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77)다. 백씨와는 1976년 결혼했다. 윤씨에게 백씨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기 이전에 착하고 다정한 남편이고 또 친구였다. 윤씨는 남편을 말수 없고 수줍음 많은 청년으로 기억했다. 프랑스 파리 동포사회에서는 부부가 늘 손을 잡고 다니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자녀는 진희씨(46)가 있다.
윤씨와 함께 많은 작품에 출연한 원로배우 신영균은 “불란서(프랑스)에 가기 전 저를 만나면 ‘선생님, 나하고 마지막 작품 꼭 해요’라고 했다. 그렇게 약속했는데, 나보다 먼저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일 윤정희 씨 유족에게 “고인이 남긴 탁월한 성취와 빛나는 발자취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조전을 유족에게 보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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