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가 대주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국내 자본주의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A 행동주의 펀드 대표)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5일 이사회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내용의 기업가치 개선 계획을 먼저 내놨다. 주주와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외 이사 추천권을 여전히 회사가 쥐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였다. 일부 기관 사이에선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기존 사내이사 전원의 연임을 반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기존 안으로는 SM엔터의 낙후한 지배구조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이사회와 경영진을 설득했다. 이사회가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사진)에게 알리지 않고 얼라인 측 제안을 전격 수용해 20일 공동 합의 사항을 발표하면서 ‘이수만 없는 SM엔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날 SM엔터 주가는 8.2% 오른 8만3100원에 마감했다.
SM엔터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사외이사 중 1인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주주총회 이후 사내이사를 제외한 모든 이사와 감사가 참여하는 내부거래위원회도 만들기로 했다.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온 이 총괄과 특수관계인, 관계회사, 자회사들과의 모든 거래를 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직이다.
SM엔터는 향후 3년간 당기순이익의 최소 20%를 주주에게 환원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은 SM엔터의 배당방침을 문제 삼아 비공개대화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의 SM엔터 지분율은 1.1% 이상이다. 상법상 1%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여기에 3대 주주인 KB자산운용(5.12%)뿐만 아니라 타임폴리오, VIP자산운용 등 뜻을 같이하는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각각 5%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도 주총에서 표대결을 벌일 경우 얼라인 측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현 경영진과 이사회가 대주주인 이수만 총괄을 배제한 채 얼라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국내에서 주주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에 진입한 사례는 2006년 KT&G 주주총회에서 칼 아이컨과 손잡은 행동주의 펀드 스틸파트너스의 워런 리히텐슈타인 대표가 표대결을 통해 사외이사가 된 후 17년 만이다. KT&G가 소유분산기업이란 점을 고려하면 특정 대주주가 있는 기업으론 국내 첫 번째 사례다.
해외에선 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에 진입한 사례가 적지 않다.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인 넬슨 펠츠는 2018년 프록터&갬블(P&G) 이사회에 진입해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2017년 주당 90달러 안팎에서 횡보하던 P&G 주가는 펠츠가 이사 임기를 마친 2021년 140달러대까지 55% 올랐다.
가장 큰 시험대는 ‘멀티 프로듀싱 체제’ 안착이다. SM엔터는 이 총괄이 전권을 갖던 소속 아티스트들의 데뷔와 활동 계획 등도 복수의 부문에 맡기고 독립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SM엔터는 설립 이후 26년간 이 총괄 주도로 H.O.T, S.E.S, 신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엑소, 레드벨벳, 에스파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배출해왔다. 하지만 이 총괄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차준호/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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