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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경제대국 일본의 엔화는 통화가치가 가장 안정적인 통화다. 2021년까지 주요 10개국 통화 가운데 달러 대비 변동성이 가장 낮았다.
하지만 2022년 엔화는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치가 가장 널뛰기한 통화였다. 지난해 달러 당 엔화 가치는 38.48엔 움직였다. 1년새 통화 가치가 약 30%를 왔다갔다 했다. 38.51엔이 움직인 1987년 이후 35년 만에 가장 큰 폭이었다.
연초 113.40엔까지 올랐던 엔화 가치는 10월21일 151.9엔으로 32년 만의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11월10~11일은 이틀만에 엔화 가치가 7엔(5.5%) 올라 상승폭과 상승률 모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4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일부 축소한 지난 12월20일 이후에는 엔화 가치가 급격히 오르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달러 당 127엔까지 가치가 치솟았다. 10월21일 이후로만 따져도 엔화 가치는 3개월새 25엔 가량 움직였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화가 안전자산 대접을 받아 온 데에는 가치가 안정적이라는 점이 큰몫을 차지했다. 지난해 달러엔 환율의 흐름은 최근 주요국 통화 가운데 변동성이 가장 심한 영국 파운드화보다 더 숨가쁘게 움직였다.
지난해 엔화 가치가 요동친 건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때문이었다. 엔달러 환율의 움직임은 미일 금리차 변화와 거의 일치했다. 미일 금리차가 급격히 벌어진 건 지난해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린데 반해 일본은행은 단기 기준금리를 연 -0.1%, 장기 기준금리를 0%에 묶어놓는 '나홀로 금융완화'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경쟁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기 후퇴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 주식과 채권 등 주요 금융시장은 모두 부진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장에서 유일하게 방향성을 읽기 쉬웠던 자산이 엔화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1년 내내 "마이너스 금리를 포함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마지막 금리정책결정회의인 12월20일 일본은행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일부 축소하기 전까지의 얘기다.
보통 외환시장 참가자는 기업과 금융회사 등 실수요자와 환차익을 노리고 외화를 사고파는 헤지펀드 등의 투자자로 구성된다. 일본 외환시장에는 독특하게도 또 하나의 세력이 있다. 일본인 개인투자가들을 일컫는 '와타나베 부인'이다.
1997년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일본의 전업주부가 고위험 해외 금융상품에 거액을 투자하는 현상을 소개한 기사에 '와타나베 부인, 조심하세요' 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자율이 거의 0인 일본의 엔화를 팔아 이자율이 높은 해외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주로 활용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인 개인투자가들 뿐만이 아니라 헤지펀드 등 해외 투기자금도 활용하는 전략이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은 사토(佐藤)와 스즈키(鈴木)다. 와타나베는 6위다. 왜 일본 개인투자가들에게 '사토 부인'이나 '스즈키 부인'이 아니라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는 지는 일본인들도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1998년 세계 주요국을 찾아다니며 외환법 개정을 위해 사전협의를 하던 재무성 담당자의 성이 와타나베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와타나베 부인이 사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 외환시장 개인투자자의 80% 이상은 남성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우려한 전업주부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찌됐건 와타나베 부인과 엔 캐리 트레이드는 엔화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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