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항공우주국(NASA), 록히드마틴, 매사추세츠공대(MIT)….
2015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시(市)에서 열린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최 로봇경진대회 결선 현장엔 ‘로봇 좀 만든다’는 세계적인 기업과 기관, 대학들이 집결했다. 로봇이 자동차를 몰아 장애물을 피해 1차 목적지까지 가는 게 첫째, 차에서 내리는 게 둘째 임무였다. 그다음 2차 목적지로 이동해 문을 열고 밸브를 해제한 뒤 적합한 도구를 선택해 벽에 있는 원형의 검정 바탕을 제거하는 게 최종 관문이었다. 결선에 오른 23개 팀 중 3개 팀이 임무에 성공한 가운데 한국 중소기업이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전에 있는 로봇 강소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는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다양한 로봇이 투입됐지만 밸브를 열고 냉각수를 보충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로봇은 없었다”며 “로봇 기술력의 한계를 깨달은 미국이 로봇 기술 발전을 위해 마련한 당시 대회에서 가장 빠르게 모든 임무에 성공해 만점을 얻고 정상에 섰다”고 돌아봤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공학박사인 이 대표가 스승인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와 함께 2011년 창업한 회사다. 한국 최초의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하면서 성장의 주춧돌을 마련했다. 회사 설립 이후부터 세계 곳곳에서 휴보를 찾는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의 해군을 비롯한 정부가 최대 고객인 가운데 MIT, 퍼듀대, 컬럼비아대와 구글도 휴보를 구입했다. 이족보행 로봇을 개발해 판매까지 하는 건 세계적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유일하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핵심 부품, 소프트웨어, 제어 알고리즘을 모두 내재화해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게 최대 경쟁력”이라고 24일 말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 같은 경쟁력을 앞세워 지금은 협동로봇(로봇팔) 시장 확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협동로봇은 기존 산업용 로봇의 안전 관련 문제점을 보완해 작업자와 한 공간에서 협력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 덕분에 제조현장은 물론 서비스업 분야로 로봇 활용도를 넓히기 수월해졌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협동로봇은 일반 산업용 로봇처럼 작동 반경 대비 1.5배의 공간과 별도 펜스가 필요 없어 투자 부담이 작고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활용할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해외 시스템통합(SI)업체 등 글로벌 파트너사를 다수 확보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삼성전자가 로봇산업의 첫 투자처로 이 회사를 낙점한 것도 레인보우로보틱스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이 회사의 신주 590억원어치를 사들여 지분 10%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두 회사는 ‘따로 또 같이’ 협동로봇을 비롯한 로봇 기술력을 고도화하는 데 힘을 합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투자한 영향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약 두 배로 뛰며 로봇주 가운데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