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26일 07:1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에 독점권을 줬던 소속 아티스트들의 기획 및 프로듀싱 업무를 다양한 제작자들에 분산하는 멀티 프로듀싱 계획을 밝히면서 그가 창시한 세계관인 SMCU(SM Culture Universe)와 가상 공간인 '광야(KWANGYA)'의 운명에 관심이 모인다. 회사는 그간 이 총괄 주도로 3년여간 소속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세계관을 확장해왔다.
2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M엔터는 기관투자가인 얼라인파트너스와의 합의에 따라 오는 2월3일 '멀티 프로듀싱' 계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 방안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총괄이 사실상 전담해온 회사의 아티스트 관리에서부터 프로듀싱과 관련한 최종 승인권을 사내 시스템으로 이식하는 방향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10월 SM엔터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 총괄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 프로듀싱 라이선스 계약을 2022년 12월 31일부로 조기종료한다"고 밝히면서 예상된 결과다. 이 총괄은 SM엔터의 주요주주 중 한 명이지만 2010년 이후 등기이사에서 모두 사임해 공식적인 회사의 직책은 없다. 이 총괄이 주도한 모든 프로듀싱업무는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용역 계약에 의해 이뤄진 결과였다.
SM엔터가 2020년 10월부터 진행해온 대표 프로젝트인 SMCU도 라이크기획과 계약의 대표 사례다. SM엔터는 같은해 11월에 데뷔한 걸그룹인 에스파(aespa)를 시작으로 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을 연결한 하나의 세계관을 발표했다. 이 총괄은 2020년 10월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WCIF) 연사로 참석해 해당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SM엔터 아티스트들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등 다채롭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SMCU에선 SM엔터의 소속 아티스트들이 가상 공간인 광야에서 팬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세계관을 쌓아간다.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들이 서로 뭉치기도 대립하기도 하며 스토리를 쌓아가는 마블과 유사하다. 보아·HOT에서부터 에스파, 레드벨벳, NCT,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이 모두 SMCU의 등장인물이다. 이 총괄은 자신을 더이상 '선생님'이 아닌 SMCU의 '선장'으로 호칭하며 이 프로젝트에 애착을 보여왔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사회가 약속한 라이크기획과 조기종료 기한이 지난해 12월31일로 만료되면서 라이크기획의 광야 세계관도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SM으로선 광야 세계관을 포기하기 어렵다. 최근 엔터사업 특성상 아이돌 수익화 사업에 세계관이 핵심이란 맥락에서 SM이 수년간 내온 성과는 다른 엔터테인먼트 경쟁사보다 앞서있다는 평가 또한 받아왔다. 소속 아티스들과 팬들 사이에 호불호는 갈렸지만 'SM=광야' 공식이 자연스러워지며 회사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럼에도 라이크기획과 결별로 지배구조 개편을 알린 시점에서 다시 이 총괄에게 막대한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라이크기획 혹은 이 총괄 개인이 주요 주주로 올라있는 자회사 등을 통해 운영하던 SMCU와 관련된 사업권을 SM엔터가 모두 이관받는 방식이다. 이 총괄 입장에서 이에 동의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한 엔터담당 애널리스트는 "이사회의 지배구조개선안 발표 직후 주가 상승세가 오래 이어지지 않은 데엔 여전히 대중 사이에서 SM엔터가 이수만 총괄을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는 것 같다"며 "내달 발표할 멀티 프로듀싱의 구체적 청사진이 기업가치를 좌우할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MCU 세계관과 연관된 이 총괄의 '터널링' 문제도 점화되기도 했다. SM엔터는 소속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지난해 7월 메타버스 팬 클럽 서비스인 '광야클럽' 서비스를 런칭했다. 이 서비스의 주체는 SM엔터가 아닌 2008년 싱가포르에 설립된 에스엠브랜드마케팅이다. 이 회사는 SM엔터가 지분 42.04%를 보유 중이고 이수만 총괄와 가족들이 41.73%를 갖고 있다. 나머지 16.23% 지분 대다수도 이 총괄과 관련된 인사들이 나눠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SM엔터가 최대주주가 아니다보니 재무제표엔 연결회계로도 잡히지 않은 관계사로 분류된다.
이미 SM엔터가 100% 자회사 에스엠스튜디오스를 통해 2대주주에 올라있는 디어유가 상장에 성공한 데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별도의 플랫폼을 여는 점을 두고 시장에선 의문이 제기돼왔다.
차준호/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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