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물가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은 국제 곡물 가격 등이 안정세로 접어드는 추세인데 국내 식품 가격은 왜 오르느냐며 이같이 의구심을 표했다. 식품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값을 올렸는데 원재료 가격이 안정화됐다면 업체들 논리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업체들 입장은 다르다. 식품업계는 대부분 원재료를 비축해놓으므로 원재료 가격 변동 영향은 수개월씩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는 데다, 지난해 원재료 가격이 가파르게 오를 때 이를 곧바로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이다.
제주개발공사는 제주삼다수 가격을 다음달부터 평균 9.8% 올릴 예정이다. 2018년 출고가를 6~10% 인상한 지 5년 만이다. 대형마트 기준으로 2L 제품은 1080원, 500ml 제품은 480원으로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채널별로 소비자 판매가가 달라지지만 대형마트 기준으로 2L는 980원에서 100원, 500ml는 430원에서 50원씩 인상되는 셈이다.
2월부터 웅진식품에서 판매하는 음료 20종의 편의점 가격도 평균 7% 오른다. 편의점 판매가 기준 초록매실(180ml)은 1300원에서 1400원으로, 아침햇살(500ml)은 2000원에서 2150원으로, 하늘보리(500ml)는 1600원에서 1800원으로 인상될 전망이다. 매일유업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은 단백질 음료인 '셀렉스 프로핏 복숭아·초코·아메리카노' 3종 음료 가격을 2900원에서 3200원으로 300원 올리기로 했다.
메로나, 비비빅, 슈퍼콘 등 아이스크림도 인상된다. 빙그레는 이 아이스크림들 가격을 일반 소매점 기준 1000원에서 1200원으로 20% 인상한다. 빵·시리얼 등 간식류 값도 오를 예정으로 농심켈로그는 콘푸로스트, 첵스초코 등 시리얼 제품 가격을 10% 안팎으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SPC삼립은 정통크림빵 등 일부 제품의 편의점 가격을 20%대로 올리기로 했다.
롯데제과 역시 다음달 1일부터 만두, 돈가스 등 일부 냉동제품 가격을 5∼11% 올릴 계획이다. 의성마늘프랑크 등 냉장제품 가격도 7~14%대 인상한다.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도 다음달 2일부터 제품 판매 가격을 평균 5.1%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표 메뉴인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의 단품 가격은 4500원에서 4700원으로 오른다.
라면이나 과자 등 가공식품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밀의 경우 올해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4.7% 하락한 t당 299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옥수수와 콩도 생산량 증가로 인한 수급 개선으로 같은 기간 가격이 각각 16.5%, 11.6% 떨어질 전망이다.
원유(原乳) 가격도 안정화 추세다. 올해부터는 원유를 마시는 음용유와 유제품을 만드는 데 쓰는 가공유로 나눠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시행된다. 유업체들이 낙농가로부터 구매하는 가공유 가격은 ℓ당 947원에서 800원으로 15.5% 낮아진다. 한우 사육 두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소고기 도매 값도 20% 넘게 하락 중이다. 역대급 하락세라는 말도 나온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면서 식품업체들의 원가 부담도 적지 않게 해소될 전망이지만, 원자재 값과 인건비, 물류비 상승에 따른 부담 등을 내건 제품 가격 인상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치솟았던 곡물, 육류 등 세계 식량가격은 지난해 1월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이런 하락 흐름이 시장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비축해놓은 원재료를 쓰는 방식이라 가격 변동 영향은 몇 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특히 식품 가공업체들은 그동안 곡물 가격 인상분을 식품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고물가 우려가 퍼진 상황에서 곡물가격 인상분만큼 가격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국내 식품업계의 경우 제조원가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3.8~78.4%에 달한다. 올 상반기부터 가격을 올린 일부 품목의 경우 국제 곡물가격 흐름과 무관하게 가격대를 유지할 공산이 크다. 가공식품 특성상 한 번 가격을 올리면 다시 낮추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운송비,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이 크게 올라 식품 가격을 내리기 힘든 이유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높은 원재료 가격 수준과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각 업체들이 제조원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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