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들어선 내셔널 갤러리는 국가 주도로 탄생한 대영제국 최초의 국립 미술관이다. 2400여 점에 달하는 명화를 간직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산드로 보티첼리, 한스 홀바인, 얀 반 에이크까지 유명 화가들의 명작을 감상할 수 있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내셔널 갤러리’(2016)는 유럽 회화의 보고(寶庫)를 한눈에 담아준다. 노련한 도슨트(전시해설가)가 관람객에게 실제로 들려주는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내셔널 갤러리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화면으로 접할 수 있다. 작품 복원 과정과 갤러리 운영 방식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다큐에선 다양한 명화 가운데 독일 출신 화가인 한스 홀바인(1497~1543)의 작품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대표작 ‘대사들’을 포함해 홀바인의 작품은 평범한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형과 함께 종교화가인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어릴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스물아홉 살에 영국으로 떠난 홀바인은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초상화 등을 그리는 궁정화가가 됐다.
홀바인이 서른여섯 살에 그린 초상화 ‘대사들’엔 그만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가 담겨 있다. 그림 속 왼쪽 인물은 프랑스 대사 장드 당트빌이고, 오른쪽 인물은 프랑스 주교 조르주드 셀브다. 멋진 옷차림과 선반 위에 깔린 고급 융단만 봐도 이들의 높은 지위와 부유함을 느낄 수 있다. 선반 위 해시계, 천구의(별자리 위치를 지구면 위에 새긴 것) 등은 두 사람의 지식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많은 사람이 작품에 강렬하게 매료된 결정적인 비결은 그림 아래쪽에 있는데 특정한 각도에서만 보이는 해골이다. 해골은 다른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죽음’을 상징한다. 나아가 홀바인은 해골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의미를 담았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부유한 사람이라고 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 메멘토 모리는 그렇게 누구나 결국엔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홀바인이 그림을 통해 하려는 말은 죽음의 공포에 갇혀 불안하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뜻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홀바인의 그림은 그렇게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준다. 삶을 겸허하고, 찬란하게 만드는 말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도록.
해당 다큐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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