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막바지부터 한반도 전역에 한파·폭설이 들이닥쳐 신선식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호남, 제주 등 겨울철 과일, 채소의 주요 산지에서 작물이 얼어 출하하지 못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하우스 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연료비도 크게 올라 이 부담이 신선식품 가격에 전가되고 있다. 한파와 폭설은 농작물 생육뿐만 아니라 수확과 물류에도 차질을 주기 때문에 추위가 물러난 뒤에도 농작물 가격이 한동안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6일 팜에어·한경 농산물가격지수(KAPI)를 산출하는 예측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이달 25일까지 KAPI 평균은 150.25포인트로 집계됐다. 이는 집계가 시작된 2013년 이후 그해 12월~이듬해 1월의 두 달간 평균 지수 가운데 2020년(156.37)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치다.
겨울철 농산물 물가가 이처럼 치솟은 것은 주산지인 전라남도와 제주도에 한파·폭설이 이어지면서 동절기 작물이 곳곳에서 냉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전남 나주, 곡성, 광양은 지난 25일 아침 기온이 영하 15~20도로 떨어져 기상관측 이후 가장 낮은 1월 최저기온을 나타냈다.
이 바람에 전남 지역의 배추와 대파는 당분간 출하가 어려워졌다. 전남농협 관계자는 “배추와 대파 잎이 얼어 부서져 수확은 엄두도 못 낼 지경”이라며 “작물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출하 지연에 따른 가격 상승이 전망된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월동무, 당근도 추위로 인해 출하가 일시 중단됐다. 테란에 따르면 25일 당근 도매가격은 1년 전보다 76.2% 상승한 ㎏당 1651원에 거래됐다.
난방비가 큰 폭으로 오르자 농가들은 ‘방한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겨울철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비닐을 두세 겹 덧대고 강풍을 견디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고정할 파이프를 추가하는 등 시설 보수를 해야 하지만, 올겨울에는 이 작업을 줄였다.
광주원예농협 관계자는 “비닐하우스에 쓰는 비닐은 1년 쓴 뒤 교환하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 농가가 비닐값을 아끼려 2~3년을 사용하고 있다”며 “오래된 비닐은 투광률이 떨어지고 난방 효과가 감소해 작물 생육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광주원예농협이 생산해 농민에게 공급하는 비닐하우스용 필름(비닐)값은 주원료인 폴리에틸렌(PE) 가격이 급등해 2021년보다 20%가량 오른 ㎏당 5600~7950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악천후가 악순환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연료비 상승 부담으로 생육 온도를 1~2도 낮추면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해 시설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나 출하량이 줄어들 공산도 크다. 한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는 “지금은 미리 수확한 재고가 출하되고 있지만 저장 상품이 소진되고 나면 품질·출하량에 따라 시세 편차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제/무안·제주=임동률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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