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대 갤러리 아시나요?' Z라면 꼭 알아야할 갤러리 [Z세대가 빠진 미술시장]

입력 2023-01-27 10:42   수정 2023-01-27 10:43



[한경잡앤조이=원윤지 테사 에디터] 글로벌 긴축기조현상으로 대부분의 시장이 위축된 현재, 오히려 성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지난해 매출액만 1조 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치를 달성한 국내 미술시장이다. 연간 매출액 5천억 원을 넘기기도 어려웠던 지난 십 수 년과는 다른 풍경이다. 해외 미술시장은 이처럼 한국 미술시장에 부는 순풍을 미리 감지한 걸지도 모른다. 세계 2대 아트 페어(Art Fair)로 불리는 ‘프리즈(Frieze)’가 ‘서울’을 아시아 첫 진출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은 높은 거래액을 기록한 것은 물론, 미디어 아트처럼 전통 회화와 함께 다양한 장르가 도입되거나 비교적 낮은 연령대인 2030 컬렉터가 몰리는 등 다른 아트 페어와 차별화된 면면을 보였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라는 수식어를 독차지했던 홍콩에 이어 ‘서울’이 또 다른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해석된다. 그렇다면, 주요 갤러리들이 서울까지 날아와 선보이고 싶었던 작품은 무엇일까. 최근 미술계 트렌드를 읽고자 한다면, 이들이 가는 방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글로벌 TOP 5 갤러리로 읽는 미술시장 – (1) 가고시안, 페이스,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는 마치 아이돌 소속사처럼 작가의 작업 활동을 지원하거나 작품을 대신 판매한다. 특히나 주요 갤러리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전시 기획, 예술 교육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미술시장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세계 5대 갤러리라 불리는 가고시안, 페이스, 데이비드 즈위너, 화이트 큐브, 하우저 앤 워스. 이번 편에서는 그중 세 곳을 우선 짚어본다. (순서는 순위와 무관).

? 해가 지지 않는, 가고시안



컬렉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는 갤러리 ‘가고시안(Gagosian)’. 1980년에 시작돼 세계 19곳에 분점을 둘 만큼 큰 규모와 높은 시장성으로 유명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갤러리들의 수장 등 그 별명 역시 화려하다. 한국 시장에는 이번 페어로 첫 진출하는 격인 가고시안 부스에서 떠올린 키워드는 ‘친숙함’과 ‘화제성’이었다. 마크 그로찬, 백남준 등 한국 관람객을 고려해 익히 알 법한 블루칩 작가만 선정해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크 그로찬의 ‘무제’(2021). 가고시안 부스에서 이 작품 앞에 줄 선 관람객 수가 가장 많았다. 앞다투어 인증 사진을 남기는 소리를 뒤로하고, 입체감이 도드라지는 작품을 들여다보았다. 카드보드지에 브러시, 주걱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페인트층을 쌓아 올리는 작업 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규칙과 대칭을 모두 거부하고 자유분방함을 지향하는 것 같았다.



200억 원 이상에 팔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1984). 리히터는 드레스덴에서 출생해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다. 추상과 구상,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다양한 시도로 사진과 회화의 영역을 확장했다. 해당 작품은 높이만 2미터 이상에다가 전면에 전시되어 있어 노란빛이 전시장을 압도했다.



(좌) 일명 스마일 꽃으로 알려진 다카시 무라카미의 ‘꽃’(2022) 연작 6점. 다카시는 대중과 거리가 멀었던 오타쿠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루이비통, 수프림 등 다양한 패션 하우스와도 협업했다. 올해 부산에서 전시가 예정되어 있을 만큼 국내에서도 선호하는 작가다. (우) 백남준의 ‘베이클라이트 로봇’(2002).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단정하고 소박한 형태였다. 해당 작품은 아트 페어가 진행되는 동안 판매되었다.

? 혁신 또 혁신, 페이스



최근 오설록과 협업하여 한남동에 티하우스를 오픈해 SNS상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페이스. ‘예술가를 위한 갤러리’라는 모토답게 창업자는 갤러리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 전통적인 흐름에 저항하며, 다수가 의아하게 여기는 분야를 예술과 접목한다. 실리콘밸리가 미술에 관심 없다고 하면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식이다.



이번 아트 페어에 선정해 온 작품에도 테마가 있었다. 회화보다 조각에, 남성 작가보다 여성 작가에 힘을 실어 다른 갤러리와 차별을 꾀한 모습이었다. 전시장 공간 구성도 흥미로웠다. 다른 갤러리와 같은 화이트 큐브를 쓰면서도 관람 동선이나 설치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독에서 태어나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키키 스미스의 ‘Rest Upon’(2009)은 전시장 바닥 한복판에 설치하여 지나다니는 관람객들 사이에 녹아들도록 했다.



키키 스미스의 또 다른 작품 ‘Miss May with Corsage’(2008). 작가 그간 터부시되었던 체액, 배설 등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사용하며 여성 신체를 사실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해당 작품은 높이만 약 56cm로 무릎까지 오는 작은 조각이었는데 부스 구석에 놓여 있었다.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지나칠지도 모를 공간까지 활용한 것.




버려진 가구를 모아 추상 조각으로 재창조한 루이스 네벨슨의 ‘무제’(1976~1978). 구체적인 쓰임이 있던 물건도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재발견’으로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 베니스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에 본 작품이라 더욱 반가웠다.

? 미술계 트렌드 세터, 데이비드 즈위너



데이비드 즈위너는 앞서 소개한 두 갤러리에 비해 늦게 설립되었지만 성장 속도만큼은 빠르다. 뉴욕, 홍콩, 파리 등을 기점으로 활동 반경을 점차 넓혀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전속 작가의 라인업도 화려한데, 최근에는 야요이 쿠사마, 캐서린 번하드, 로즈 와일리 등 동시대 내로라하는 여성 작가들에 주목하는 모습이었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세련된 편집숍처럼 미술시장의 트렌드만 집약적으로 짚어낸 듯한 인상을 받았다.



루이비통과 10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아 화제가 됐던 야요이 쿠사마. 현존하는 여성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강박적인 물방울 무늬와 호박이 시그니처인데, 이번에 데이비드 즈위너는 선명한 색이 돋보이는 ‘Dwelling of Love’(2016)를 내세워 색달랐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급격하게 떠오른 작가 캐서린 번하드의 ‘Tree’(2021). 한 관람객이 촬영하는 모습이다. 번하드는 핑크 판다, 가필드, ET 등 대중문화 속 캐릭터를 차용해 팝아트 감성으로 표현한다. 높이만 3미터 이상인 캔버스가 온통 키치한 형광빛 핑크로 가득 차 있어 부스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데이비드 즈위너 말고도 다른 부스에서 번하드의 그림을 판매해서 그런지 “여기도 핑크 판다 있네!”라며 반갑게 이야기하는 관람객들이 있었다.



로즈 와일리의 ‘마이클 잭슨Ⅰ'(2018). 2021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진행한 바 있어 국내 관람객에게 비교적 친숙한 작가다. 유명인을 재치 있게 표현한 점과 편안한 색감이 큰 특성이다. 와일리는 40대에 미술 관련 학위를 얻고 70대가 되어서야 영국 가디언지에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소개되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찾아보다 빠르고 늦다는 식의 구분법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낯선 감각을 일깨우고, 시도할 힘을 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인 것 같다.

* 글로벌 TOP 5 갤러리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원윤지 님은 미술투자 플랫폼 테사(TESSA)에서 미술과 브랜드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콘텐츠 에디터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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