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출소한 고위험 성범죄자의 학교 등 주변 거주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추진한다. 최근 조두순·김근식·박병화 등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주거지를 둘러싸고 커진 논란과 주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다만 한국형 제시카법이 현 구상대로 시행되면 서울에서는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사실상 거주하기 어려워지고 지방에 몰리게 된다는 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계획이 담긴 '2023년 5대 핵심 추진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재범 우려가 큰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 시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미성년자 교육 시설 반경 500m 이내에 살지 못하게 하는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을 오는 5월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다만 해당 법이 적용되는 거주 제한 대상은 거주 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고려해 범행을 반복했거나 13세 미만인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자로 한정하기로 했다.
이번 법 개정은 현재 미국의 30개 이상 주(州)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시카법'이 모델이 됐다.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아동 성폭행 전과자에 의해 살해된 9살 소녀 제시카 런스퍼드의 이름을 따 제정됐다.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 최소 25년의 형량을 적용하고, 출소 후 평생 전자발찌 등 위치추적 장치를 채워 감시하도록 하는 법이다. 또한 성범죄 전과자가 학교와 공원의 2000ft(약 610m) 안에 살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실제로 시행되면 고위험 성범죄자는 사실상 서울 등 대도시에선 거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인구밀집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 시내 초·중·고, 어린이집, 유치원 수는 약 8000곳으로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평균 간격은 약 300m(반경 약 150m)로 집계됐다.
법조계에서는 한국형 제시카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일각에서는 시행 효과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고, 특정 지역으로 성범죄자들이 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에 비해 비교적 인구가 적은 지방으로 범죄자가 몰릴 수 있게 되면서 지방 주민의 불안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는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한국형 제시카법이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500m 안에 어린이집이라든지 학교, 학원 이런 곳이 없는 곳은 수도권에서 찾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기대한 재범 방지 효과 대신 수도권을 제외한 특정 지역에 성범죄자가 몰리게 되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이에 법무부 부대변인은 "구체적인 거주 제한 반경은 최대 500m 범위를 기준으로 법원이 사안에 따라 거주 제한 범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도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자체가 성범죄자 출소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공익성과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시카법과 같이 단순히 주거 지역을 제한하는 것이 아닌 형량 강화, 성범죄 관련 교육 등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무엇보다도 성범죄자의 형량 강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며 "성범죄는 중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범죄라는 인식이 마련돼야만 범죄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력 성범죄자들, 아동 성폭행범 등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모든 국민이 성범죄자로부터 안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에 대한 대응은 지자체들이 나서야 한다.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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