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하지 않고 집에만 있어야 할 사람이 지금 책방에 와 있다. 한파를 뚫고 와서는 책방 사장님과 오목을 두고 있다. 바둑돌 하나를 내려놓기 무섭게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해피 뉴이어, 이번주 원고 마감 알고 계시죠?” 계획만 세우느라 날짜 가는 줄 몰랐는데, 벌써 설이 지났다. 이쯤 되니 야심 찼던 ‘새해 계획’에 트집을 잡고 싶다. “비현실적이다” “터무니없다” “분수를 모른다” 등등.
불현듯 열렬한 노예해방론자였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나의 콘트라밴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종군간호사 데인은 주인에게 아내를 빼앗긴 로버트(그는 남북전쟁 중 해방된 노예인 콘트라밴드다)의 분노와 아픔에 절절히 공감하면서도 그가 병상에 누워 있는 주인을 죽이고 범죄자가 되는 일을 끝까지 막아선다. 두려움보다 강한 연민의 힘으로 마음을 다해 그를 설득한 것이다. 데인의 도움으로 병원을 떠난 그는 군에 들어가 그녀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 로버트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건 그가 끝끝내 죽이지 못한 주인이었다. 그러니 그가 고통에 신음하며 데인을 향해 웅얼거린 마지막 한마디를 어찌 잊을까. “약속 지켰어요, 저는 만족해요.”
나도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러려면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해야 하는데, 그건 약속을 지킨 것 외에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어떠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약속을 지킨 이가 말하는 ‘만족’의 질감을 떠올려 본다. 한겨울 폭설 속에서도 뜨겁게 피어난 동백 꽃잎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을까? 힘겹게 써낸 800장의 원고지를 가슴에 끌어안은 느낌일까? 아무래도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약속은 현실적인 것을 넘어선 곳에 있지 않을까?
‘죽은 것을 심어 본 적 있다//뭐든 심으면 열매가 되어 열릴 거라고/믿었기 때문이다’ 임지은 시인의 시 ‘죽은 나무 심기’의 한 구절이다. 오로지 강렬한 믿음 덕분에 우리는 불가능한 것에 다가간다.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시도한다. 새해에는 지킬 만한 계획 말고 지킬 수 없는 계획을 세우면 어떨까? 그리고 반드시 지킨다고 믿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다 걸고, 모자라면 피로와 짜증까지 다 걸고 강렬하게 믿으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글쓰기뿐인 단순하고 완벽한 새해 계획 덕분에 나는 계획에 없는 일들을 더 많이 하는 한 해를 살게 되겠지만, 그래서 좋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끊임없이 새해 계획에 다가갈 테니까. 임솔아 작가는 자신의 첫 단행본 책날개에 실린 약력을 이렇게 썼다. “내가 쓴 글들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 이 한 줄의 약력에 대해 홍일표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아름다운 약력”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자기가 쓴 글들이 대신 말해주는 약력이라니, 영원에 머물던 신비로운 시간이 바로 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쓴 글들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내가 널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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