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대학 설립에는 기본계획 수립부터 설계·시공·인가 및 개교까지 최소 5~6년이 걸린다. 그러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은 학교시설과 장비가 없어도 다음 해에 개교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줬다. 역대급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전력은 출연금으로 2031년까지 1조6000억원을 지출해야 한다. 작금의 채권시장의 교란과 에너지요금 논란을 생각하면 매우 황당한 상황이다. ‘동·서·남해안권발전 특별법’에 따른 해안권 발전종합계획은 총사업비 74조원 이상을 지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사업 타당성이 없거나 중복적인 사업이 많고, 관리가 부실한 사업이 다수라고 한다. ‘포뮬러원(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지원법’은 4회 대회까지 누적적자가 1900억원, 재정지출은 최소한 6000억원인 어마어마한 빚잔치를 초래했다. 이후 대회는 불발되고 F1 운용사에 천문학적인 위약금까지 물게 될 가능성이 있어 전라남도의 재정을 파탄 냈다.
국회가 특별법·지원법을 만들어서 국가에 큰 부담을 남긴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봤다. 그 사업이 보편타당하거나 국민들이 지지한다면 이런 법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미국 의회도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국회와 큰 차이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당히 수준 높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최근의 온라인플랫폼 규제 법안의 경우가 그러하다. 미 하원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소위 GAFA) 네 개 회사의 기업 행위를 통한 지배력 행사와 관련해 다섯 개로 구성된 반독점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달에 그중 네 개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규제 대상이 광범위하고 불명확하며, 기존 경쟁법과 별도로 추가 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고,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의 성장 및 혁신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미칠 수 있다는 비판론에 따른 것이다. 반면 우리 국회에서는 문어발식 성장, 시장의 지배자, 시장
자율의 한계 운운하며 서슬 퍼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다 같이 표를 의식해야 하는 의원님들이지만 법안의 부작용에 대한 사려와 국가 전체를 보는 안목의 차이가 확연하다.
지금이라도 가덕도공항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국토교통부의 타당성조사도 보다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수년 전에는 나름대로 과감하게 사업에 반대하던 국토부였다. 오히려 세상이 바뀐 요즘 발표한 사전타당성조사에서 억지로 사업의 당위성을 꾸려내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가장 소망스러운 방향은 적폐가 되고 있는 각종 특별법·지원법들을 국회가 자발적으로 살펴보고 교정해주는 것이다. 역사에 남는 탁월한 정치가 될 것이다.
이제는 거대 사회간접자본(SOC)을 함부로 건설해서는 안 된다. 급변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의 구분이 냉혹할 정도로 엄정해졌다. 공항, 관광, 도로, 에너지망, 교육, 과학기술 등 대부분의 SOC에 대한 수요와 공급 방정식은 완벽하게 변화했다. 전 세계인의 기호, 지식과 지성의 원천, 자원과 공급망의 흐름, 에너지 조합, 물류수단의 급변이나 혁신이 그 원인이다. 당연히 엄청난 규모의 빅데이터가 창출될 것이다.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하면 아마도 그 답은 아주 짧은 지선, 연결라인, 국제협력, 간단한 안내나 예측 앱, 합리적인 가격정책들이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로 SOC를 대체하고 보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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