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 윤석열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을 관통하는 말이다. 금융당국은 국제 정합성이 떨어지는 한국만의 자본시장 규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제도 개선안을 쏟아내고 있다. 수차례 고배를 마셨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에도 고삐를 당기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공매도 정상화’를 꼽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공매도를 금지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크게 엇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매도와 관련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상당한 만큼 당분간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내용은 모두 MSCI 선진지수 편입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MSCI 지수는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산출하는 지수다. 전 세계 주요 지수 중 추종하는 자금 규모가 가장 크다. 한국은 현재 중국, 인도, 대만 등과 함께 MSCI 신흥지수에 속해 있다.
선진지수 편입은 한국 증시의 ‘숙원사업’이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면서 사람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금융당국이 MSCI 지적 사항에 대한 제도 개선안을 연이어 내놓으면서다.
정부는 내년 6월 MSCI 선진지수 관찰국 목록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르면 관찰국 목록에 오르고 1년 뒤인 2025년 6월 선진지수 편입이 결정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이행한 내용이 부족해 당장 올해 6월 관찰국 목록 등재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동떨어져 있는 규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진지수에도 편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2020년 3월 16일 전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했다. 2021년 5월 3일부터는 코스피200·코스닥150 종목에 한해 공매도를 부분 재개했다. 여전히 2000개가 넘는 종목에 대해선 공매도가 금지된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공매도를 금지한 국가 가운데 공매도를 전면 재개하지 않은 곳은 한국과 인도네시아뿐이다.
대부분의 증시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공매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인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공매도 금지 기간(2020년 3월 16일~2023년 1월 27일) 동안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약 44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개인투자자의 증시 유입에 따른 ‘착시’도 있지만 공매도 금지 조치의 영향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외국인은 롱쇼트 거래, 현·선물 차익거래 등 포트폴리오 헤지 차원에서 공매도를 활용한다. 공매도 금지로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증시는 위험 관리가 불가능한 시장”이라는 평가가 확대되고 있는 이유다. 골드만삭스·JP모건 등 전 세계 160개 글로벌 금융기관을 회원사로 둔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는 최근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보고서에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전면 해지되기까지 외국인 매도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외국계 헤지펀드 정관에는 ‘헤지가 안 되는 시장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불법 공매도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선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공매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선 공매도 정상화와 MSCI 선진지수 편입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MSCI 신흥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 규모가 한정된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MSCI 신흥지수 내 한국 비중은 2003년 19.40%에서 지난해 11.95%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하 연구원은 “MSCI 선진지수 편입에 따른 자금 유입도 중요하지만, 신흥지수에 잔류했을 때 직면하는 장기적 자금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개인투자자 눈치를 보며 공매도 정상화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당초 금융위는 지난해 상반기에 공매도를 전면 재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내 증시가 급락하면서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고 투자자 신뢰를 회복한 뒤 전면 재개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이후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확대 △90일 이상 대차 시 정보보고 의무화 △개인투자자 담보비율 인하 등 제도 개선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전면 재개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야권을 중심으로 공매도 문제가 정치화하면서 금융당국이 논의조차 꺼리는 상황”이라면서도 “역대 최장 기간 공매도 금지 조치가 지속된 만큼 정부에서도 결단을 내릴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형교/이동훈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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