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 ‘쿠키런’으로 유명한 데브시스터즈가 최근 구조조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달엔 넷마블에프앤씨의 자회사 메타버스게임즈와 메타버스월드가 대규모 전환배치를 추진하고 있고요. 작년 말엔 CJ ENM이 사업부를 통폐합하는 대규모 조직 개편을 했습니다.
이들 기업의 공식 입장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회사는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기업 법인에 속한 전체 인원은 명백히 줄어듭니다. 어떤 방식을 통하는걸까요.
최근 ‘당일 통보’로 유명해진 데브시스터즈가 그렇습니다. “구성원들이 다른 프로젝트나 부서로 이동해 쿠키런 IP 성장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는 게 공식입장입니다. 직원들이 내부에서 옮겨갈 부서 등을 지원할 의사가 일부 있고, 그래서 구조조정은 아니라는 겁니다.
실상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운이 좋게 유관 업무 분야의 다른 일을 맡게 되는 이도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오랜 기간 재무팀에서 손익 회계를 맡았던 사람이 갑자기 인사팀의 평가 업무 담당으로 발령받는 식입니다. 직원 입장에선 전문성을 살리기도, 회사 입장에선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를 두고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는 어느 회사에 있었느냐보다 어느 프로젝트에서 어떤 직무를 맡아 했는지가 훨씬 중요한 이력으로 쓰인다”며 “중간에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본인의 주력 업무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사실상 커리어가 꼬이게 되는 것이라 제발로 나가는 게 현명한 일이 된다”고 했습니다.
“게임으로 치면 받는 퀘스트대로 이것저것 손대며 버티다 명확한 강점이 없는 ‘망캐(망한 캐릭터)’를 만드느니 아예 다른 곳에서 기존 강점을 키우려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한 대형 콘텐츠기업은 최근 기존 팀장 상당수에 대해 팀장 직위를 해제하는 ‘면팀’ 조치를 했습니다. 콘텐츠 수급이나 광고 영업 등 사외 협업이 중요한 직무에선 상당히 의미있는 조치입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직급이 낮아졌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줄었으니까요.
이 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내 동료들이야 전과 같은 일을 하는 것으로 알아주지만 거래처는 그렇지 않다”며 “팀장으로 나가면 바로 협력사 팀장이나 부장을 만나 계약을 따올 수 있지만, 팀원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실적 내기에도 걸림돌이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들은 이외에도 갖가지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임종호 노무사는 “직원의 부서는 동일한 상태에서 무기한 대기발령을 내거나, 사내에 조직을 하나 신설한 뒤 사실상 구조조정 대상자를 몰아 배치해 사직을 유도하는 방식도 비공식적으로 쓰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경우 직원이 내일부터 회사에 나올 수 없고 업무도 없지만, 근로 계약 자체가 당장 종료되는 건 아닙니다. IT업계에선 트위터 등이 최근 이같은 조치로 많은 직원들을 내보냈습니다.
이 사이 기간 기업 내 면담 등을 통해 직원이 권고사직 서류를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경영상황 등의 이유로 근로계약을 종료하자는 회사의 권고에 근로자가 동의해 자발적으로 그만둔다는 내용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인사 담당 관계자는 “해고는 기업이 직원을 해고해야만 했다는 정당한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이후 법적 다툼의 소지도 있다”며 “이때문에 되도록 권고사직 조치를 쓴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게임,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 업계에선 사업이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돌아가는 기업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나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는 ‘대박’이 날 지, 쪽박이 날 지 먼저 알 수 없는 구조인 영향이 큽니다. 출시해서 잘 되면 계속 투자를 늘리지만, 아니면 빨리 프로젝트를 접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직원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몸값을 높여 다른 업체로 이직을 할 수 있습니다. 게임 수요가 확 커졌던 코로나19 기간 이른바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등 주요 기업 개발자들의 몸값이 치솟았던 것도 이때문입니다.
반면 같은 이유로 시장 열기가 사그러들어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내부 전환배치 등 갈 곳을 알아보려 전전해야 합니다.
게임업계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 정 모씨는 “이 업계에선 회사가 프로젝트를 접기로 결정해 담당자들이 사직 처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여력이 되는 기업의 경우엔 대기발령 상태에서 두어달간 같은 기업의 다른 팀으로 옮기거나 아예 다른 직장을 물색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지만, 작은 기업은 직원들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선 한동안 새 직장을 찾으러 나오는 이들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코로나 특수’ 이후 같은 성장세를 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개발자 등 수요가 확 커져 인력을 대거 충원하고 연봉도 올려놨는데, 현재 시장 상황으로는 기업이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당장 고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인력 조정에 나서야 하는 기업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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