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이면엔 담대한 도전이 있어요. 시장은 리스크는 높지만 성공하면 판을 바꿀 수 있는 사업을 좋아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정반대죠.”
1998년 KAIST 대학원생 시절부터 100번 넘게 정부 연구개발(R&D) 과제에 지원했던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사진)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과제 성공 확률이 98%에 이르는데 애초에 위험은 적고 성공할 만한 사업만 선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정부의 중소기업 R&D 지원 사업은 절차적 진입 장벽이 높고 실패에 대한 페널티(벌칙)가 컸다고 일갈했다. 2014년 설립된 블루포인트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뿐만 아니라 멘토링, 투자자 연결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다.
이 대표는 “오죽하면 선배들도 ‘진짜 사업을 하려면 정부 과제는 하지 말라’고 했다”며 “정부 과제를 할 인력을 따로 둬야 할 정도로 행정 비용이 전체의 7할을 차지했다”고 과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대담한 도전을 하려면 최고의 팀을 꾸려야 하는데 성공을 목표로 하면 팀이 정치적으로 변질한다”고 했다.
창업 경험이 있는 그는 스타트업을 ‘산업의 정찰대’라고 표현한다.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먼저 가서 살피는 역할이란 얘기다. 그는 “성공할 게 뻔해 보이는 사업에 투자하면 오히려 필패”라며 “‘이게 되겠어?’ 하는 사업이 세상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벤처업계의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12일 ‘중소기업 R&D 제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부채 비율이 1000% 이상이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도 기술 역량을 갖췄다면 중기부의 지원 사업에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5억원 이하 지원 사업부터 적용한다.
벤처투자 시장 내막을 들여다보면 재무적 결격 요건은 없애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은 주로 상환전환우선주(RCPS) 조건으로 투자받는데, 금융위원회가 이를 엄격하게 회계상 부채로 해석하기 때문에 초기 기업일수록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절차적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정부 과제 사업계획서 양식도 대폭 간소화했다. 29종에 달했던 제출 서류도 줄어든다. 그동안 사업계획서를 쓰려면 70~80장은 기본이고 책자로 만드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많이 해본 ‘선수’들만 지원하거나 컨설팅 업체가 개입하기 일쑤였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최대 20장으로 제한했다.
사업 계획을 변경할 때도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사전 승인 방식에서 사후 통보 방식으로 바꾼다. 기술·경제적 여건이 변해 과제 수행을 지속하는 데 실익이 없을 땐 별도 제재 없이 중단하는 절차도 마련했다.
이 대표는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신뢰도가 많이 높아졌다”며 “기업 운영에 대한 도덕성이나 기업가 정신이 예전보다 건강해졌기 때문에 지원 정책도 이에 맞춰 바뀐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중소기업 R&D 제도 혁신으로 개별 지원 사업의 실패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임팩트는 더 클 것”이라며 “이제 ‘미세먼지를 해결하겠다’ ‘재사용 로켓을 개발하겠다’는 등의 담대한 도전을 하는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글=허란 기자/사진=이솔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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