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코스전략 중 ‘봄&가우지(bomb&gouge)’란 게 있다. 드라이버로 최대한 멀리 보낸 다음 짧은 채로 공을 그린에 올리는 방식이다. 세컨드 샷(파4 기준)을 러프에서 짧은 채로 치는 게 페어웨이에서 긴 채로 치는 것보다 홀에 더 가까이 붙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전략이다.
이 스타일로 재미를 본 대표적 선수가 ‘괴력의 장타자’ 브라이슨 디섐보(30·미국·사진)다. 그런 그가 봄&가우지 전략을 버리기로 했다. 장타를 치려고 몸을 지나치게 불리면서 건강상태가 나빠졌다는 이유에서다. 거리를 내려다 보면 티샷 정확도가 떨어지는 만큼 장타의 효용이 실제론 크지 않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디섐보가 빠지면서 지난 몇 년간 남자 프로골프의 화두였던 ‘비거리 전쟁’도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장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발을 빼기로 한 것이다. 2016년 그가 프로에 데뷔할 때만 해도 키 185㎝에 몸무게 80㎏대로 ‘호리호리한 체격’에 가까웠다. 2018년까지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5승을 쓸어 담은 그는 이듬해 “더 발전하기 위해선 비거리를 늘려야 한다”며 20㎏ 넘게 몸을 불렸다. 여기에 근력 운동과 하루 7000㎉에 달하는 식단 등으로 스윙 스피드를 극단적으로 늘렸다. 그 덕분에 2021년에는 드라이브샷 평균 비거리 323.7야드를 기록하며 ‘장타왕’에 등극했다. 힘껏 친 공이 내리막까지 타면 400야드도 심심치 않게 넘겼다.
파4 홀에서 ‘원 온’을 하거나 그린 근처까지 보내는 디섐보를 당해낼 선수는 많지 않았다. 봄&가우지의 위력을 실감한 PGA에선 이후 장타 경쟁이 벌어졌다. 대표적 선수가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였다. ‘프로들의 프로’로 불릴 정도로 완벽한 스윙을 구사하는 매킬로이는 스윙 궤도를 낮게 바꾸고 몸통 회전을 늘리는 방법으로 디섐보를 따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급격한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디섐보를 따라 하려다 샷이 망가졌다. 볼은 더 멀리 날아갔지만 스윙은 엉망이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랬던 디섐보도 결국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무리하게 몸무게를 늘린 것이 원인이 됐다. 소화기 이상으로 몸무게가 빠지고 감당하기 힘들 만큼 기분 변화가 심해지는 등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고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왼손목 골절 수술을 받았고, 12월에는 턱뼈 위쪽에 생긴 낭종 제거 수술도 받았다. 4위까지 올라갔던 세계랭킹은 96위까지 추락했다. 우승 횟수도 ‘벌크업’ 후가 3승으로, 그 전 5승보다 못했다. 디섐보는 몸이 가장 불었을 때보다 10㎏ 넘게 감량했다. 그는 “지금은 건강해졌다”며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세계 골프 규칙을 정하는 영국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이참에 선수들이 장타 경쟁을 더 이상 벌이지 않도록 규제를 내놓기로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R&A와 USGA가 3~4년 이내에 비거리가 많이 나는 공과 드라이버를 규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 협회는 클럽과 공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비거리가 늘어난 게 경기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클럽과 볼의 반발력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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