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게임·콘텐츠 업체들이 내놓은 설명은 한결같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사와 맞물린 조직개편을 ‘우회적인 구조조정’이라고 설명한다. 엉뚱한 부서에 배치하거나 직급을 강등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고 있어서다.
2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쿠키런’으로 이름난 데브시스터즈는 지난달 30일 쿠키런 지식재산권(IP) 기반 플랫폼 ‘마이쿠키런’ 담당을 비롯한 직원 30여 명을 인사 조치했다. 넷마블에프앤씨의 자회사 메타버스게임즈, 메타버스월드도 대규모 직원 이동을 추진하고 있다. 콘텐츠 기업 CJ ENM은 지난달부터 사업부 일부를 통폐합하는 등 강도 높은 조직 개편을 하고 있다.
형식은 조직 개편이지만 실은 해고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대규모 조직 개편이다. 팀이나 사업부를 폐지하고 소속 인원을 전환 배치하는 식이다. 이들이 모두 다른 부서로 배치받아 성공적으로 새 업무에 적응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iOS 플랫폼 개발자가 클라우드 서비스 관리자로 이동하는 등 기존과 전혀 무관한 직무로 배치된다면 더욱 그렇다.
직원의 직급을 낮추거나 직위를 해제하는 방법도 종종 쓰인다. CJ ENM은 최근 기존 팀장 상당수에 대해 팀장 직위를 해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조치는 당장 사표를 쓰라는 뜻”이라며 “직급이 낮아지면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업무와 관련한 권한도 대폭 축소돼 버티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이런 조치에 나선 것은 ‘코로나 특수’ 동안 덩치를 확 불린 게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이용자들의 재택 비중이 높을 땐 게임·콘텐츠 수요가 급증했지만 요즘은 아니다. 생활 물가가 오르자 게임과 콘텐츠 소비도 둔화하는 모습이다.
2020년 12월 147명이었던 데브시스터즈 임직원은 2021년 3분기에 615명, 작년 3분기엔 859명까지 늘었다. 인건비가 급증하는 동안 영업이익은 뒷걸음질쳤다. 2020년 3분기에 3억원 적자를 냈고 작년 3분기엔 38억원을 손해 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상당한 규모의 정리해고가 쉽지 않은 구조다 보니 조직 개편을 핑계로 직원도 회사도 서로 눈치싸움을 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시장 상황에 따라 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그나마 게임·콘텐츠 업계에서 ‘사실상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건 사업이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임종호 노무법인 유앤 노무사는 “게임·콘텐츠 업계는 인력 이동이 타 업계에 비해 유동적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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