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루즈!', 눈호강 100% 보장…친숙한 팝송은 양날의 검 [리뷰]

입력 2023-02-03 08:00  


19세기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수많은 예술가가 몰려들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흥과 환락이 공존했던 그곳에서 빨간 풍차가 돌아가는 카바레 물랑루즈는 보헤미안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전성기를 지나 현재까지 133년간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물랑루즈는 몽마르트르의 대표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물랑루즈에서는 술을 즐기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상징적인 공연은 긴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빠른 템포에 맞춰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는 캉캉춤이었다. 유명 인사를 비롯해 화가, 가수 등이 물랑루즈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겼다.

아시아 초연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 '물랑루즈!'는 1899년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 출신의 가난한 젊은 작곡가 크리스티안은 몽마르트르에서 새로운 공연을 기획하던 보헤미안 로트렉을 만나 물랑루즈에 '보헤미안 랩소디'를 올리기로 뜻을 모은다. 이들이 원하는 주연은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사틴. 이후 크리스티안은 사틴과 사랑에 빠지지만, 둘 사이엔 귀족 몬로스 공작이 있었다. 재정 위기에 빠진 물랑루즈를 구하기 위해 사틴은 크리스티안을 향한 마음을 숨겨야 했다.


바즈 루어만이 연출한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물랑루즈!'는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개막할 당시 사전 제작비만 2800만달러(약 356억원)가 투입된, 제대로 힘을 준 작품이다. 스토리는 단순한 반면 다채로운 볼거리로 만족감을 높였다. 2021년 제74회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등 10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퍼스트 클래스 레플리카 공연으로 오리지널 창작진 및 제작진과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싱에 참여, 브로드웨이 분위기를 최대로 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무대 세트, 소품, 의상, 가발 등을 미국,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동시 제작했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1899년 파리, 물랑루즈에 발을 들인 듯하다. 사방을 에워싼 붉은색 불빛과 화려한 샹들리에,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풍차와 코끼리 조형물까지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끝이다. 공연 시작 10분 전 앙상블 배우들이 선보이는 프리쇼(pre-show)도 또 하나의 재미다.

차고 넘치는 볼거리로 승부수를 띄운 만큼 여러 시각적 요소가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돈의 맛'이 느껴지는 휘황찬란한 무대 세트와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각종 쇼가 1막에서 쉼 없이 펼쳐진다. 물랑루즈의 대표 공연 캉캉춤도 빠지지 않는다. 무대가 울릴 듯한 에너지 넘치는 쇼의 향연에 이어 사틴은 공중그네를 타고 등장해 매혹적으로 관객들을 홀린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1막 마지막 장면은 사틴과 크리스티안이 에펠탑 앞에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는 모습으로 끝맺는다. 몽환적인 파란 불빛에 아름다운 선을 강조한 군무, 플라잉 안무, 에펠탑 조형물이 어우러져 '낭만의 도시' 파리를 떠올리게 한다.

'물랑루즈!'는 마돈나, 시아, 비욘세, 레이디 가가, 아델, 리한나 등의 히트팝을 리믹스한 넘버로 구성된 '매시업(mash up)' 뮤지컬이다. '레이디 마멀레이드(Lady Marmalade)'를 시작으로 '셧 업 앤 댄스(Shut up and dance)', '위 아 영(We are young)', '싱글 레이디(Single Ladies)', '톡식(Toxic)', '샹들리에(Chandelier)',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 '다이아몬드(Diamonds)' 등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익히 알고 있는 곡이라 쉽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지만 신선하고 새로운 넘버를 원하는 이들에겐 다소 아쉬울 수 있다. '물랑루즈!'는 개막 당시 VIP석을 역대 최고가인 18만원으로 책정해 화제가 됐던 바다. 시각적, 쇼적으로는 충분히 티켓값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음악적으로는 어딘가 허전할 수 있다. 메시지를 강조한 작품이 아니기에 스토리적으로도 부족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테다. 하지만 '쇼 뮤지컬' 자체의 매력에 충실하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듯하다.

공연은 내달 5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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