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제중재 판정에 이어 형사 소송을 통해 승기를 잡으려 했던 교보생명은 이번 2심 결과에 아쉬워하면서도 법원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교보생명 측은 “이번 재판 결과가 어피너티가 산출한 풋옵션 행사 가격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반면 어피너티 측은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풋옵션 행사 과정에서 제출한 안진의 평가보고서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이번 무죄 판결로 신 회장이 처음부터 풋옵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우리 측을 공격하였다는 비판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2012년 9월 주당 24만5000원에 교보생명 지분 24%를 샀다. 교보생명은 3년 안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신 회장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약정도 맺었다. 하지만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코스피 입성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어피너티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어피너티는 2018년 10월 교보생명에 풋옵션 행사를 통보했다.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주당 41만원의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정했다. 교보생명은 매입가의 두배에 달하는 이 가격이 터무니없다며 어피너티의 풋옵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어피너티는 2019년 3월 교보생명을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에 국제중재를 신청했다. 교보생명은 2020년 3월 어피너티와 안진회계법인을 검찰에 고발하며 맞불을 놨다.
교보생명은 기세를 몰아 2021년 12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하며 IPO 절차를 재개했다. 하지만 사실상 불발됐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을 하려는 기업은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송 등 분쟁사건’이 없어야 한다. 작년 2월 1심 법원이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교보생명 IPO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부적절한 공모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항소심 과정에서는 안진회계법인에 대해 ‘조치없음’ 결론을 내린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 윤리조사심의위원회 판단의 적절성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한공회의 이 같은 판단은 1심 무죄 판결이 나오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심 공판 과정에서 한공회 심의위원은 어피너티와 안진회계법인의 공모 정황이 담긴 244개의 이메일 자료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해 논란을 빚었다.
어차피 소송으로 갈 확률이 높으니 최대한 가치(공정시장가치)를 높이자는 내용이 해당 이메일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항소심 결과가 1심과 달라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가치평가 업무는 그간의 판례에 의하면 기업이 작성한 회계 서류 등 전문적인 회계 지식과 경험에 기초해 주어진 정보로 다른 재무 지식을 동원해 판단하는 업무”라며 어피너티 측 손을 들어줬다.
어피너티 측은 2018년 말에 제시한 풋옵션 가격 41만원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글로벌 긴축 등의 여파로 주요 생명보험사의 주가는 4년 전에 비해 최대 40%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생명 한화생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기준으로 교보생명의 주가를 추정하면 15만~18만원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교보생명은 어피너티가 애당초 신 회장이 받아들이지 못할 41만원이라는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상고하면 이번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된다. 어피너티가 지난해 3월 ICC에 신청한 국제중재 2차 재판도 남아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교보생명 IPO 추진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교보생명은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IPO 및 주주 간 협상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어피너티 측의 법적분쟁 유발로 가장 객관적인 풋옵션 가격을 평가받을 수 있는 IPO 기회가 지연된 만큼 이제라도 주요 주주로서 적극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며 “회사는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금융지주사 전환, IPO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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