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저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에서 “동아시아의 종말이 오고, 새로운 미국의 세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 인구는 3배 가까이 늘었다. 선진국의 전유물이던 산업화가 확산됐고, 세계는 하나의 마을처럼 분업체계가 갖춰졌다. 이 같은 세계화는 미국이 만든 질서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44개국 연합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쓰기로 합의했다. 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면서 유례없는 속도로 발전했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금본위 체제는 명목화폐 체제로 바뀌면서 값싼 자본이 무한 공급됐다. 크고 작은 경제문제가 터질 때마다 더 많은 현금을 쏟아부어 해결했다. 전 세계의 인구 성장이 떠받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 먹혔지만, 이제 그 인구구조가 함몰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패권 도전이 문제가 아니라 체제 존속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책은 탈세계화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비로소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 중 하나다.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고, 현재 인구의 2배를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다. 중국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의 인구 감소가 본격화하면 남은 소비력이 북미에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책은 한국의 입장에서 종말론과도 같다. 한국은 수출과 수입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지구촌 전역을 누비지 못하고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서문(한국어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75년간 한국이 망한다는 데 내기를 건 이들은 모두 졌다. 창의력과 불굴의 의지로 탈세계화의 난관을 헤쳐나갈 국민이 있다면 그는 바로 한국인일 것이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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