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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에 소극적인 일본의 전통적인 경영인 상(像) 역시 쇼와모델을 대표한다. 일본 심리학의 대부 가와이 하야오는 '중공구조(中空構造) 일본의 심층'이란 책에서 “일본의 정치 지도자와 기업 경영인은 강력한 지도자보다 전체적인 균형을 조율하는 조정자형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 기업은 강력한 리더가 이끄는 통합형 경영체제가 많지만 일본 기업은 균형형 경영체제가 흔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신사는 입구인 도리이(鳥居)부터 고색창연한 건축물이 늘어서서 신성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막상 신사 안은 텅 비어있다. 겉보기엔 화려한데 알맹이는 텅 빈 일본 신사의 사당(祠)처럼 일본 기업은 실질적인 리더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각 계열사나 사업부의 힘이 서로 작용해 조직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수십, 수백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의 선단식 경영 시대에 이러한 경영체제는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경쟁력이었다. 반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오늘날 전통적인 일본 경영인 모델은 기업을 고인물로 만드는 원인이다.
품질검사 부정, 직장 내 괴롭힘, 입찰 담합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 미쓰비시전기는 조정자형 경영체제의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쓰비시전기는 8개의 사업부문 대표자가 사장을 돌아가면서 4년씩 나눠 맡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사장은 조직의 리더라기보다 8개 사업부의 조정자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사업구조 재편과 같은 변혁을 추진하는 리더는 드물었고, 현상 유지에 힘을 쏟는 관리자가 대부분이었다. 수성에 골몰하는 고만고만한 경영인은 미쓰비시전기뿐 아니라 일본 기업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본 특유의 현상이다.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멤버이자 올해 일본 3대 경제단체인 경제동우회 대표로 선출된 니나미 다케시 산토리홀딩스 사장은 이를 ‘마트료시카 현상’이라고 부른다. 비슷비슷한 유형의 경영인이 반복해서 배출되는 일본 기업의 풍토를 큰 인형 안에서 작은 인형이 나오고 또 그 속에서 더 작은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에 빗댔다.
변화를 거부하는 경영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일으켜 세운 힘이었던 ‘애니멀 스피릿(야성적 추동)’의 상실이 겹쳐지면서 일본 경제가 시들고 있다는 게 일본 재계의 자체 진단이다.
작년 3월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중기 경영예측 결과를 내놨다. 코로나19가 2022년 이내에 수습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계경제에 준 충격이 2025년까지 마무리된다는 표준 시나리오에서도 2030년대 일본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상시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 실적 부진에 따른 설비투자 부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근로자 1인당 급여 증가율은 0.3%에 그치고, 대기업의 영업이익도 60조 엔 수준에서 정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재가 핵심 자원인 시대에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도 쇼와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직 외국인을 채용하려는 일본 기업들이 전문성보다 일본어 회화 실력을 더 중시해 인력난을 자초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21년 외국인전문 취업사이트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문직 외국인을 구하는 기업의 75%가 최고 수준의 일본어 실력을 요구하는 반면 기준을 충족하는 외국인 인재는 37%에 불과했다.
2021년 11월 말 기준 전문직 외국인을 찾는 구인 광고 1만8000건 일본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등록자 9000명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일본 기업의 75%는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관하는 일본어능력시험(JLPT)의 최고 등급인 ‘N1’ 이상의 어학 실력을 요구했다. 반면 외국인 구직자 가운데 N1 등급을 받은 사람은 37%에 그쳤다.
5등급으로 나뉘는 JLPT 시험의 2~3번째 등급인 N2와 N3 실력의 외국인 구직자가 절반에 달했다. 이런 불일치를 방치하고서 일본 기업들은 항상 외국인재가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일본의 정보기술(IT) 관련 인력이 최대 79만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 정부는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 인재를 불러들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학생지원기구의 2019년 조사 결과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일본에 취업한 비율은 36.9%로 정부 목표치인 50%를 크게 밑돌았다. 전문성보다 일본어 실력을 중시하는 기업의 채용 방침이 인재 수입을 막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미국과 유럽은 회화 능력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채용 관행이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요한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는 직무기술형 채용제도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직무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채용한 인재를 업무에 필요한 교육을 하는 연공서열 방식의 종신고용제가 대부분이어서 회화 능력을 과도하게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고바야시 유지 파솔종합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은 “정보기술(IT)분야는 해외인재 활용이 필수적인 업종이지만 일본어 능력을 중시한 나머지 우수한 외국 인재를 놓치는 기업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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