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임직원들은 위기 극복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레고를 이끌던 수장인 인도 태생 영국인 발리 파다가 “성인이 돼서야 레고를 처음 접했다”고 고백했다.
수장 교체가 급선무였다. 레고를 알아야 레고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고는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적임자를 찾아냈다. 당시 덴마크 재계에서 ‘경영의 귀재’로 떠오른 닐스 크리스티안센이었다.
크리스티안센은 1966년 덴마크 남부 쇠네르보르에서 태어났다. 1991년 덴마크 최고 공과대학 DTU의 토목기술학과를 졸업했다. 맥킨지에 입사해 매니지먼트 컨설턴트로 4년간 일했다. 이 기간 프랑스 인시아드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이후 건설 자재업체 힐티 등을 거쳐 38세의 나이에 보청기 업체 GN스토어노르드의 부사장에 올랐다. 2004년 덴마크 냉난방 설비업체 댄포스로 적을 옮겼고, 4년 만에 댄포스의 CEO가 됐다. 댄포스는 레고의 오너 일가가 소유한 기업이다.
댄포스에서 13년간 그는 경영능력을 입증해냈다. 댄포스의 글로벌 시장을 확대해 매출을 두 배 끌어올리는 등 턴어라운드(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디지털화에도 나서 전통 냉·난방 설비업체에 불과하던 회사를 에너지 효율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당시 그의 연봉은 연간 5000만덴마크크로네(약 89억원)였다. 덴마크 연봉킹(1위)에 올라 가장 유명한 덴마크 기업인이 됐다.
크리스티안센은 2017년 3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고 싶다”며 돌연 댄포스를 떠났다. 그를 탐냈던 요르겐 비크 크누드스토르프 레고 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수차례 크리스티안센을 찾아가 설득해 마침내 레고 수장에 앉혔다.
2017년 10월 CEO에 오른 크리스티안센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심했다. 그는 전문경영인이었지만 창업자의 초심을 경영철학으로 삼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능한 한 많은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경영철학이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의 목표가 곧 내 목표”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안센은 레고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블록이었다. 아이들이 레고 블록을 손에 쥐고 체험할 수 있게 해야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취임 무렵 미국 최대 장난감 유통업체 토이저러스와 북유럽 최대 장난감 회사 탑토이가 연달아 파산해 오프라인 매장에 관한 위기감이 확산했다. 하지만 레고는 매장 수를 대폭 늘리는 도전을 감행했다.
그는 레고의 디지털화에도 대규모로 투자했다. 레고에 증강현실(AR)을 접목한 새 시리즈를 출시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키웠다. 소비자들이 블록 상품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레고 아이디어스’, 레고 세계관을 창조하는 ‘레고 월드 빌더’를 만들면서 충성도를 높였다. 레고 캐릭터를 활용한 커뮤니티인 ‘레고 라이프’ 앱도 구축했다.
그 결과 레고는 2019년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을 제치고 세계 1위 완구업체라는 타이틀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2020년 이후엔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봉쇄 기간 소비자들이 실내 놀거리로 레고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코로나 특수가 끝났음에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늘었다.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한 결과였다.
크리스티안센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뉴욕 5번가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을 때 레고를 만들며 함박웃음을 짓던 부모와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이 레고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브랜드 경험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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