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합동연찬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날 관심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금개혁의 한 축인 기금운용 개혁 청사진을 밝힐지에 쏠렸다. 하지만 조 장관의 발언은 “기금운용 의사결정의 전문성을 강화해 수익률을 제고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부터 실무 조직인 기금운용본부까지 전문성을 강화해 수익률을 높이고, 이를 통해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겠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오랜 연금개혁 논의에 참여해온 전문가들에게 ‘기금위의 전문성 부족이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낮춘 핵심 원인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수익률의 95%를 좌우하는 자산배분 결정권을 기금위가 갖는다곤 하지만 실질적으론 기금본부 등 전문가 조직이 만든 안을 거의 그대로 승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의 최근 10년 수익률은 연평균 4.9%로, 9.58%에 달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낮은 수익률의 근원을 ‘정치’에 지배당하는 지배구조에서 찾는다. 역대 정부 기금위에서 가장 뜨겁게 다뤄졌던 이슈는 국민임대주택 등 공공투자 확대(노무현 정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국민연금을 정책 수단으로 삼는 시도였지, 수익률 제고가 아니었다.
자연히 기금위원의 덕목은 이해관계 단체를 얼마나 잘 대변하느냐, ‘정치 싸움’을 잘하느냐가 됐다. 300개가 넘는 국내 상장사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란 거대한 ‘권력 도구’를 놓을 수 없는 정부로서는 이 체제를 굳이 흔들 이유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번만큼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연금 규모는 2040년 1755조원으로 불어난다. 현재 시가총액 370조원 수준인 삼성전자 네 개를 사고도 남는 규모다. 연금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정치권의 개입 욕구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개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 없이 국민연금 수익률 높이기에만 주력할 ‘금융계의 히딩크’를 기금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전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정치화’에 어퍼컷을 날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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