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뜨거웠던 2023년 로펌업계 ‘1차 스토브리그’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매년 그랬듯 올초 역시 법원 인사철에 맞춰 법관 영입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법원을 떠나 자유계약시장에 나온 판사들이 줄잇는 상황에서 유독 존재감이 빛났던 건 고등법원 판사였다. “베테랑 중에서도 검증된 엘리트”라는 평판 속에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들이 공격적으로 고법 판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 영입을 성사시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법원 정기인사 때 퇴직한 고법 판사 15명 중 10명이 국내 주요 로펌 변호사로 합류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이호재(사법연수원 28기)·천지성(35기)·김도현(36기) 서울고법 판사와 박성준 부산고법 판사(31기) 등 네 명을 영입해 선수층을 더욱 두텁게 다졌다. 법무법인 광장은 정수진(32기)·김영진(35기) 서울고법 판사, 세종은 강문경(28기)·권순열(31기) 서울고법 판사를 새 식구로 맞았다. 바른(김용하·27기)과 해광(이완희·27기), 화우(양시훈·32기), 율촌(최웅영·33기)도 서울고법 판사를 영입했다.
고법 판사는 연매출 100억원 이상인 로펌들이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퇴직 후 3년)을 받지 않고 영입 가능한 베테랑급 법조인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함께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받는다. 일단 자격 요건을 갖춘 법조인들 중에서도 발탁된 인물이란 점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판사로 분류된다. 법관인사규칙 10조는 ‘고법 판사는 상당한 법조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 지원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15년 이상의 경력을 채워야 기본 요건을 갖췄다고 여겨진다. 한 차례 경쟁을 통과해 임명된 고법 판사들은 첨예한 쟁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항소심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쌓은 경험 역시 로펌들이 눈독 들이는 자산이다.
한 판사 출신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고법 판사는 경험과 실력, 인맥 모두 검증됐기 때문에 늘 영입 후보에 올라있다”며 “조세나 공정거래, 노동 등 특정분야에서의 전문성까지 갖췄다면 스카우트 0순위”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주요 로펌들은 매년 법원 인사가 나기 한참 전부터 사직서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고법 판사들을 점찍고 영입작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는 고법에서 사상 최다 퇴직자가 나오면서 영입전쟁이 더 치열했다는 평가다. 고법 퇴직 판사 수는 2011∼2015년엔 연간 1~2명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20년 11명이 그만둔 데 이어 2021년 9명, 지난해 13명이 법복을 벗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줄세우기 폐단을 막기 위해 고법 부장판사 인사를 없애고 지방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한 여파가 컸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인사가 이뤄진 2018년을 마지막으로 고법에선 부장판사 승진이 사라졌고 고법 부장판사가 경력순으로 맡아왔던 지법원장도 일선 판사의 추천을 받은 지법 부장판사만 임명될 수 있게 됐다.
법조계에선 장기간 승진이 어려운 인사 체계상 고법 판사들의 사직 행렬이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엑소더스’ 수준의 인력 이탈에 울상인 반면, 로펌들은 인재 풍년기를 맞아 미소 지을 전망이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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