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러분들은 지긋지긋한 교통 체증에서 벗어나 화려한 은색 기차 안에 앉아 있을 겁니다.” 선거 유세가 치열했던 2008년 당시, 캘리포니아주의 유권자들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출발하는 기차 안에 앉아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은색 기차는 교통 체증으로 꽉 막힌 도시를 유유히 빠져나가 가속하더니, 2시간 30분쯤 지나 샌프란시스코 도심으로 진입합니다. 기차 안에서는 아침 식사와 커피가 제공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칩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에 탑승해 활주로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에 여러분은 총알 열차를 타고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적인 두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려던 위대한 프로젝트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사업’은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2월 초에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큰일을 마무리하는 법 How Big Things Get Done>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사업 이야기로 시작한다. 위대하고 환상적이라고 여겨졌던 프로젝트가 결국 처참하게 실패하게 되는 이유와 패턴을 소개한다.
‘총알 열차’로 불리며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역시 실패한 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첫 계획이 수립된 이후 14년이나 지난 지금도 사업 계획은 반복적으로 지연되거나 변경되고 있다. 그러면서 비용은 430억달러에서, 680억달러, 770억달러, 거의 830억달러로 치솟았고, 프로젝트가 완성되려면 추가로 얼마나 더 비용이 투입해야 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덴마크 출신의 경제학자 벤트 플뤼비아(Bent Flyvbjerg) 옥스퍼드대 교수와 저널리스트 댄 가드너(Dan Gardner)가 함께 쓴 이 책은 대형 프로젝트의 사전 예측이 실패하는 원인과 의사 결정의 오류를 분석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건축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블록버스터 제작 과정, 브루클린의 잘못된 주택 개조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사례를 열거하면서 성공하는 프로젝트와 실패하는 프로젝트의 차이를 찾아낸다. 1만6000여 개의 공공 및 민간 대규모 프로젝트를 조사한 결과 92% 이상이 예산이나 일정을 초과해 난항을 겪는다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기술적, 심리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을 파헤친다.
책은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언급하면서 ‘신중하고 철저한 계획’과 함께 반드시 ‘빠른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착공하기 전에 이미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완성돼 있었다. 스케치에서 완공까지 단 21개월이 걸렸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모든 단계를 꼼꼼하고 확실하게 진행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건축 비용은 5000만달러로 추산되었지만, 4100만 달러로 마무리됐다. 개막식 몇 주 전에 이미 공사가 완료됐다. 비전이 계획으로 바뀌고 결국 새로운 현실이 되기 위해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시켜준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무분별한 공약을 남발한다. 과연 그들의 공약 가운데 과연 몇 퍼센트나 달성될까. 실효성이 없는 프로젝트임에도 공약을 지키기 위해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일까. <큰일을 마무리하는 법>은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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