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맥시멀리즘(최대주의)에 대한 신선한 대안(Alternative).”
미국의 대표 공영라디오 채널인 NPR이 걸그룹 뉴진스를 소개한 문장이다. 온갖 음향 효과와 리듬, 멜로디가 담긴 기존 K팝 노래와 달리 단순한 멜로디와 경쾌한 리듬으로 미국 팬들을 사로잡았다는 의미다. 과연 BTS와 블랙핑크에 이은 대형 K팝 아이돌이 탄생한 걸까.
국내는 물론 해외 반응이 뜨겁다. 데뷔한 지 6개월 만에 뉴진스의 신곡 ‘디토’와 ‘OMG’는 나란히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 100’에 입성했다. K팝 아이돌 중 최단 기간이라는 신기록을 썼다. 뉴진스의 데뷔곡 ‘하입 보이’는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에서 약 2억 회 넘게 재생됐다. 음원을 선보인 지 186일 만이다. 숫자 너머의 호평도 잇따른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최고의 노래 중 하나로 뉴진스의 ‘쿠키’를 꼽았다. K팝 아이돌이 작년에 내놓은 곡 중 리스트에 든 유일한 곡이었다. 심사위원 존 캐러머니카 대중음악평론가는 뉴진스의 음악에 대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쉽다는 점이다. 과하거나 극적이지 않다”고 했다.
뉴진스의 성공 뒤엔 ‘저지 클럽(Jersey Club)’이란 음악 장르가 깔려 있다. 저지 클럽은 1990년대 후반 미국 뉴저지주 최대 도시인 뉴어크에서 창시된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의 한 장르다. 135~145bpm(1분당 비트 수)의 디스코 음악(110~120bpm)보다 빠른 박자와 친숙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저지 클럽을 이해하려면 볼티모어 클럽을 알아야 한다. 저지 클럽이 볼티모어 클럽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거칠고 강렬한 리듬이 돋보이는 볼티모어 클럽은 디스코가 물러난 클럽의 왕좌를 꿰찼다. 뉴저지 출신 DJ가 이를 뉴어크에 전파하며 저지 클럽이 탄생했다.
뿌리는 같지만 두 장르엔 큰 차이가 있다. 묵직한 저음과 투박한 멜로디가 중심인 볼티모어 클럽과 달리 저지 클럽은 재기발랄하다. 장르가 갈린 배경엔 도시 특성이 있다. 저지 클럽을 띄운 건 중산층 청소년이었다. 베드타운인 뉴어크시가 속한 뉴저지주의 재산세 평균값은 미국 전체 평균값의 2배를 웃돈다. 중위소득은 전국 4위권.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강력 범죄 1859건이 일어나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4위에 오른 볼티모어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저지 클럽을 즐기는 청소년들은 술 대신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춤췄다. 음악도 달라졌다.
지리적 특징도 반영됐다. 뉴욕과 필라델피아 사이에 있는 뉴어크의 문화는 뉴욕의 힙합과 필라델피아의 소울 등 인접 도시의 음악이 뉴저지의 가스펠과 뒤섞여 만들어졌다. 한국으로 치면 홍대와 인천의 문화를 엮은 ‘일산 클럽 음악’쯤 될까. 익숙한 멜로디에 빠른 박자가 엮이며 미국 전역에 퍼졌다.
저지 클럽 열풍은 2000년대 중반 사그라들었지만 최근 Z세대 사이에서 되살아났다. 숏폼 SNS인 틱톡이 부활의 씨앗이 됐다. 10대들 사이에 10~30초 길이의 춤을 추는 ‘챌린지’ 열풍이 불며 역주행했다. 저지 클럽 음악은 어린아이도 따라 출 정도로 단순하고 중독성이 있다. 뉴진스의 신곡 ‘OMG’에서 멤버들이 어깨에 손을 얹고 빙빙 도는 기차놀이 안무가 나온다. 뉴진스 돌풍은 어쩌면 ‘무시간성’을 사는 Z세대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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