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적 대주주가 없는 기업에 대해 흔히 ‘주인 없는 회사’라고 한다. 민간은행의 지주회사를 비롯해 포스코, KT처럼 과거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대기업을 통상 그렇게 지칭한다. 물론 엄밀하게 말해 경영권을 확실하게 장악한 지배 주주가 없을 뿐 주인이 없는 회사는 아니다. 책임경영 주체가 모호하다는 것으로, 정부 소유에서 민영화한 데 따른 역설적 부작용 같은 현상이다. 이런 기업일수록 주식 한 주 없는 정부나 여당 중심의 정치권에서 낙하산 인사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내부 인사가 대표에 오른 뒤 경영권을 쉽게 내놓지 않는 이른바 ‘CEO(최고경영자) 셀프 연임’ 현상도 나타난다.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통상 낙하산·관치 논란이 그렇게 생기고, CEO 셀프 연임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면 정부 개입은 타당한가.
은행을 비롯해 이런 기업은 민영화됐지만 과거 정부(국민 세금)가 세워 기초를 다진 기업이다. 정부의 연고권이 있다. 정부는 또 ‘선량한 관리 대행자’로서, ‘시장의 심판’으로서 적절한 관리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 운영의 규칙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고유한 의무이자 권리다. 현실적으로 수백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국민연금 기금이 주식 매입으로 투자한 마당에 그에 따른 주권을 행사할 여지도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서 여기서도 정부가 선의의 관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가 멀쩡히 대주주가 있는 기업의 경영에까지 간섭해서는 안 되겠지만, 주인 없는 기업에는 작동돼야 한다. CEO 선임 절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해서 최선의 적임자를 선임하게 하고 나아가 경영 책임을 다하게 하는 개입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잘 활용하자는 얘기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경영진을 구성해 은행과 기업 성과를 높인다면 소액 주주에게도 도움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접근하면 증권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된다.
기업에는 주주, 임직원 등 내부 종사자, 채권단 등 직접 관계집단(stakeholder)이 있다. 범위를 넓히면 협력업체도 있고 소비자도 있다. 직접 관계집단이 자율적으로 경영진을 구성하고, 투명성 확보나 책임경영이 안 되면 시장에서 주식 매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외 전문가 등 이사회의 자율성·전문성·독립성을 강화하면서 경영진에 스톡옵션 등을 부과하는 것도 의미있는 보완책이다. 주인 없는 기업의 투명성 강화는 필요하지만, 민영화된 기업의 자율성 보장도 절실하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될 당시 국민연금의 상장기업 경영 개입 방편으로 원용되면서 ‘연금사회주의’ 논란까지 빚어진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가 ‘심판’으로 공정하고 보편적인 경기 규칙을 일관되게 집행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선수’라도 되는 양 경영에 뛰어들겠다는 과욕은 경계 대상이다. 관료행정의 특성상 한번 개입·간섭하기 시작하면 관행으로 굳어질 공산이 크다. 금융감독원이 금융사 이사회 구성과 운영 각론에까지 개입하고 기준선을 일일히 마련하겠다는 것도 과잉 대응일 수 있다. 동기가 좋아도 그 틈을 타 새로운 낙하산 부대가 내려갈 수 있고, 해묵은 관치 논쟁이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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