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산업을 모태로 출범한 귀뚜라미그룹이 냉방 공조·에너지 등 비(非)보일러 사업에서만 지난해 1조원이상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귀뚜라미그룹이 경제 위기때마다 인수했던 기업들이 알짜 계열사로 거듭나 2차전지·반도체 설비 증설, 원자력발전 수주 등의 호재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50여년간 '무차입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귀뚜라미그룹은 최근 경제위기를 맞아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귀뚜라미그룹 계열사인 국내 1위 2차전지용 드라이룸 공급업체 신성엔지니어링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54%급등한 26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공장에 주로 공급하는 냉각탑 국내 1위업체인 귀뚜라미범양냉방 매출도 22%증가했고, 국내 원자력발전용 냉각기 1위이자 잠수함 등 특수선 냉동공조 1위업체인 센추리 역시 11%늘었다. 이들 3사를 포함한 귀뚜라미그룹의 냉방공조분야 매출은 지난해 72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보다 30.9%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귀뚜라미에너지(옛 강남도시가스)의 예상 매출(2700억원)을 합치면 9900억원에 달한다. 보일러를 필두로한 난방 매출(4500억원)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방송 외식 골프장 등 기타 사업을 합친 비보일러부문 매출이 처음으로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룹 전체 매출은 1조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같은 주력 산업의 변화는 보일러를 모태로 1969년 창업한 귀뚜라미그룹 입장에선 창사이후 5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부터 배우 지진희를 통해 "더이상 보일러 회사가 아니다"라며 종합 냉난방 에너지그룹임을 광고해온 귀뚜라미그룹의 선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센추리는 국내 원전 냉동 공조기 1위업체로 시장 점유율은 약 40%에 달하며 국내 유일한 경쟁 상대가 LG전자다. 원전내에서 열을 식히고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냉동 공조기는 일반 공조기와 달리 까다로운 내구성과 안전성이 요구된다. 센추리는 30여년간 국내 원전 20기 이상에 제품을 공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등 해외 원전에서 잇따라 수주을 따냈다. 올 하반기부터 프랑스 국제핵융합실험로, 중국·스페인 원전 등에서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예정이다. 잠수함 등 특수선 냉동공조 분야에서도 70%점유율로 국내 1위다.
귀뚜라미범양냉방은 국내 1위 냉각탑 제조기업으로 최근 국내 대기업 반도체공장 납품이 늘어나며 매출이 급증했다. 냉각탑은 냉동기 운전에 필요한 냉각수를 공급하는 장치로 고도의 정밀성을 요하는 반도체공장에선 냉각탑 역시 진동이나 소음이 적고 내구성이 뛰어나야한다. 범양냉방은 2014년 세계 최대 용량의 블록형 냉각탑을 독자 개발한 기술력으로 오래기간 국내 반도체업체를 고정 고객으로 둘 수 있었다.
부실했던 기업들은 알짜 계열사로 거듭났다. 신성엔지니어링은 2008년 인수 당시 매출이 1100억원에서 현재 2600억원으로 129%성장했고, 범양냉방은 114%, 센추리는 32% 각각 성장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 해외매출도 대부분 10~60배로 증가했다.
이러한 성장이 가능케한 최진민 귀뚜라미 창업주(회장)의 '구단주 경영'도 눈길을 끌고 있다. 귀뚜라미는 인수한 기업에 간섭하지 않고, ‘점령군’으로 불리는 파견 임원이 없으며, 인적 구조조정이 없는 ‘3무(無) 전략’을 쓰고 있다. "CEO는 감독처럼 기업 경영을 책임지고, 회장은 구단주처럼 좋은 선수(직원) 영입과 잘 뛸 수 있는 여건(시설) 마련에 힘쓴다"는 것이 최 회장의 평소 경영 철학이다. 신성엔지니어링은 박대휘 부회장, 범양냉방은 이영수 부회장, 센추리는 백현수 사장 등 각자 대표가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다.
경제 위기때마다 기회를 찾은 귀뚜라미그룹은 최근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최근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 복합 경제위기의 상황이 2008년과 비슷해 다시금 M&A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최근 임원들에게 "시너지를 낼 우량한 기업을 발굴한다면 그룹이 한단계 도약할 기회로 만들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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