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 창업자인 이 전 총괄은 회사는 물론 K팝 시장을 맨땅에서 일군 상징적인 존재다. 1995년 회사를 세운 뒤 1996년 H.O.T.를 시작으로 S.E.S, 신화,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을 연이어 배출해 국내 아이돌 시장을 열고 K팝 산업을 키웠다. 이런 그가 불과 지분 1%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가 촉발한 경영권 분쟁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난 것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전무한 우리 기업 환경에 시사점을 준다. 이런 상황에 이 전 총괄이 급하게 내민 손을 잡은 이는 엔터업계 후배이자 라이벌 기업인인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다. K팝을 하나의 산업으로 일군 선배와 이를 기반으로 BTS라는 글로벌 성공 신화를 쓴 후배 창업자 간 ‘이심전심의 연대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전 총괄이 이번 사태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SM엔터가 그의 개인회사(라이크기획)에 프로듀싱 용역 등 비용으로 수백억원을 지급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배당 등 주주환원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주주 불만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다른 기관투자가의 행동주의 움직임을 촉발하는 방아쇠로 작용해 주식시장의 거버넌스 지형도에 변화를 몰고 올지도 지켜볼 일이다.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하이브가 전통의 강자 SM엔터를 인수해 탄생시킬 초대형 기획사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총괄이 제기한 제3자(카카오)에 대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를 비롯해 현 경영진의 반발, 하이브의 주식 공개매수와 카카오의 맞대응,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 가능성 등 변수가 산적해 있다. 업계 초유의 이번 분쟁 사태가 어떻게 결론 나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엔터산업과 경영이 글로벌 시장으로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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