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제 감 잡은 듯" 업계도 놀란 변화…'세계 1위' 꿈꾼다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3-02-11 09:00   수정 2023-02-13 18:21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디자인하우스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미세공정이 보편화될수록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와의 가교 역할을 해줄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중소기업 위주인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이 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대만과 비교해 숙련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자인하우스가 뭐길래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가 만든 설계도를 파운드리가 효율적으로 생산하도록 다양한 기술 지원을 하는 기업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의상 디자이너(팹리스)가 드로잉(설계도)을 마치면 디자인하우스는 옷을 생산하기 위한 옷감, 재질, 마감 과정을 최적화하고 재봉소(파운드리)는 이에 맞춰 옷을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고 보면 된다. 최근 다양한 드로잉(시스템반도체)이 쏟아지는 추세여서 대형 재봉소(TSMC, 삼성전자) 일수록 일감이 많고 작업이 세분화돼 숙련된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이 커진 셈이다.

과거에는 약간의 훈련만 거치면 설계 엔지니어가 디자인하우스 작업에 곧바로 투입될 정도로 반도체 공정 난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인공지능(AI)나 에이직(주문형 반도체, ASIC) 같은 시스템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종사자에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이 요구되고 있다.

대형 파운드리일수록 미세 공정이 많아 단순히 설계 변환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설계자산(IP)을 자체 개발하고, 수많은 공정을 팹리스에 이해시키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잇는 '가교'로서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현재 에이디테크놀로지가 500여명, 코아시아 400여명, 세미파이브 300명 중반, 가온칩스 180여명, 에이직랜드 150여명 가량의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채용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연내에 100여명, 가온칩스는 50명 이상, 세미파이브와 코아시아 50여명을 뽑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는 시기와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연내에 인력을 기존 대비 30%가량 늘릴 계획이다. 채용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국내 디자인하우스 인력 규모는 1500명 수준에서 2000명 안팎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내부 시스템 정비와 산학연계,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 기존 인력의 숙련도를 높이는 방안도 병행할 예정이다.

김성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챗GPT의 출현으로 AI 반도체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며 "디자인하우스 업계에서 채용을 강화하는 만큼 국가에서도 이들을 위한 교육이나 정책 지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하우스 강국인 대만과 비교하면 어떨까
TSMC는 일찍이 오픈이노베이션플랫폼(OIP·Open Innovation Platform)이라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디자인하우스와 협력을 강화했다. 특히 가치사슬협력자(VCA·Value Chain Aggregator)라는 전문 디자인하우스 그룹을 만들어 팹리스들이 주문한 설계도를 VCA 내 8개 기업에 맡겨 최적화를 진행하고 있다. VCA는 TSMC의 최신 공정 정보를 제공받아 각종 검사를 통해 설계 오류를 최소화하고 공정 시간을 단축시킨다. TSMC의 높은 완성도가 VCA로부터 시작된다는 말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TSMC를 벤치마킹해 2018년 세이프(SAFE·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라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그중 몇몇 업체를 모아 TSMC의 VCA와 같은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Design Solution Partner) 그룹을 결성했다.

2021년 기준 에이디테크놀로지, 코아시아, 가온칩스, 하나텍, 알파홀딩스, 아르고, 세솔반도체 등 국내 7개 업체를 포함해 총 13개 DSP 업체를 확보했다가 이후 각 DSP 업체들 간 인수합병(M&A)이 진행되면서 지난해 에이디테크놀로지, 세미파이브, 코아시아, 가온칩스 등 총 9개 DSP 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DSP와 시너지를 통해 2026년까지 고객사를 300곳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DSP에 속한 기업들이 공격적인 채용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VCA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내 디자인하우스 고급 인력을 다 모아야 VCA의 가장 큰 업체인 대만 글로벌유니칩(GUC)과 알칩(Alchip)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에 그친다. GUC의 2021년 매출은 151억대만달러(약 6335억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국내 디자인하우스 중 규모가 가장 큰 에이디테크놀로지와 코아시아의 매출(각 3000억원대)은 GUC의 절반에 불과하다.

파운드리는 보안이 생명인 탓에 한 디자인하우스가 TSMC와 삼성전자 물량을 동시에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계 정보가 유출될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TSMC는 TSMC, 삼성은 삼성, 중국 SMIC는 SMIC 등 단방향으로만 거래를 하는 게 관례"라며 "디자인하우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삼성전자의 의지와 협력이 필수"라고 짚었다.

챗GPT로 인한 AI 반도체 확산이 디자인하우스의 수요 급증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 글로벌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AI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9년 134억9000만달러(약 17조6840억원)에서 2025년 767억7000만달러(약 100조6377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감을 잡은 듯"
업계 관계자는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계가 인력 확충에 나서는 건 결국 삼성과 연관된 것"이라며 "삼성이 이제 좀 파운드리에서 감을 잡은 것 같다. 시스템반도체와 고객사에 대한 이해가 더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디자인하우스의 설계 인력 규모가 파운드리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라며 "지금 당장 뽑아서 가르쳐도 빨라야 3년 후부터 기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도 미래를 내다보고 디자인하우스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과거엔 칩의 규모가 작아 팹리스가 디자인하우스 역할까지 도맡았지만 AI 반도체 응용이 늘어나고 시스템반도체가 대규모로 커지다 보니 디자인하우스가 중요해졌다"며 "애플, 테슬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자체 칩을 개발하는 추세 속에서 삼성이 이 같은 '황금 팹리스 고객'을 확보하려면 대형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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