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양쪽으로 온몸에 문신을 한 거한들이 줄지어 서 있더라고요. 차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시선이 느껴지더군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침을 탁탁 뱉는 거예요. 온갖 더러운 소리를 동원해서 침을 뱉는데 저와 원청 대표한테 절대로 직접 뱉지는 않았어요. 시비를 거는 거였습니다”
이날 A 대표를 더 암울하게 만들었던 건 경찰의 반응이었다. 경찰이 그에게 전달한 요지는 이랬다. ‘폭력 등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경찰은 개입할 수 없다’. 경찰의 말을 전달받은 그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이때보다 절실히 깨달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B 대표는 요즘 드론 소리만 들리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예민해졌다. “노조들이 건설 현장에 드론을 띄워놓고 거의 24시간 촬영합니다. 조금이라도 법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면 즉시 구청에 신고하고요. 수시로 구청에서 벌금 딱지가 날아오도록 해서 자기들과 협상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건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안 섭니다”
대통령은 산업 현장의 불법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연원은 의외로 뿌리 깊고 견고하다는 것이 주요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와 검·경의 ‘강력한’ 법 집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A 대표는 “지금 언론에 등장하는 불법 건설 노조 얘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이미 사업장이 망해서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하청 건설사들이야 경찰에 자신이 당한 일을 제보하겠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건설사는 먼지가 가라앉은 다음의 보복이 두려워 바짝 엎드려 있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의 조폭식 행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이론이 하나 있다. ‘브로큰 윈도(깨진 유리창)’이론이다. 범죄학의 주요 설명틀 중 하나로, 건물의 유리창을 깨진 채 놔두면 다른 창문도 곧 부서지는 현상을 말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건설 현장에 사이비 노조들이 득세하는 현상은 브로큰 윈도 이론에 딱 들어맞는 사례다. B 대표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법적으로 노조 자격을 갖고 있는 단체에 일단 돈을 한번 주고 나면 ‘우리도 노조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현장에 찾아온다”고 말했다. A 대표는 “타워크레인만 해도 건설노조 소속에 돈을 상납하면, 일반 민간 업체에서 파견한 기사들도 결국엔 같은 돈을 요구하고, 안 주면 태업을 일삼는다”고 호소했다.
원청에 당한 경험이 많은 하청은 자신보다 좀 더 작은 하청에 또 다른 갑질을 하게 마련이다. 건설 현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건설노조원들은 이 같은 불공정의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건설노조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쥐락펴락하면서 조폭 행태를 일삼는데, 이것 역시 건설사들의 관행적인 불법을 악용한 전략이다. 하청 건설사 입장에서 정해진 비용에 맞추려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불법 체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애써 이 사실을 눈감곤 했다.
건설노조는 이를 파고들어, 노조 소속 근로자들을 고용하라고 압박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실제로 원하는 건 외국인 노동자를 쓰더라도 자신들을 통해서 하라는 것”이라며 “실제 전국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채용 수수료를 건설 노조가 먹는 일이 다반사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의 ‘조폭성’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다. 국회와 정치인이 조폭과 무엇이 다른가에 쉽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까. 건설노조 문제만 해도 당장 한 두 해 죄질이 나쁜 갈취범들을 구속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노동 개혁이 장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전히 99%의 건설사들은 보복이 두려워 아무 말 못 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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