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한국 사회는 심하게 말하면 ‘후손을 잡아먹는’ 체제였다. 외부와의 교류가 막힌, 무기력과 적당주의가 지배하는 폐쇄적 농촌사회가 확산하면서 힘없는 후대의 피를 빠는 경제적 카니발리즘이 반복됐다. 오늘날 국민 대다수가 양반의 자손을 칭하는 것은 선산과 제사로 상징되는 조상을 앞세워 후손을 ‘뜯어먹던’ 세태에 대응했던 과거 행태들이 남긴 집합적 흔적이다.
세대 갈등은 눈앞의 문제가 됐다. 추계할 때마다 고갈 시기가 앞당겨지는 국민연금은 세대 간 대립의 심각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 해 100만 명씩 포진한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와 2차 세대(1968~1974년 출생)가 줄줄이 연급 수급자로 전환된다는 현실은 한 해 50만 명 안팎에 불과한 2030세대에겐 해결 불가능한 공포다. ‘더 내고 더 받는’ 미봉책으로도, ‘더 내고 덜 받는’ 정공법으로도 국민연금의 존속에 대한 후속세대의 의구심은 지우기 힘들다.
노인과 청년 간 긴장이 폭발 일보 직전이지만,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관(官)부터 윗세대들은 칼자루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외교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장관 등 주요 국무위원직을 1950년대생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처럼 70세를 훌쩍 넘은 수장을 둔 정부 기구도 부지기수다. 석유공사를 비롯한 300여 개 공공기관 3분의 2 이상은 기관장이 60대 이상이다. 정부 입김이 센 주요 금융회사도 ‘올드보이’의 귀환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나마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도 경직된 법과 제도가 가로막고 있다. 중소기업 대표의 30.7%인 11만8000여 명이 60대 이상(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조사)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 탓에 가업승계는 언감생심이다.
내부에서 아웅다웅하면서 힘없는 후발자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사회는 장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자식 팔아 연명했던 어두운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악몽’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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