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심사를 위해 응모자 명단을 공개할 예정입니다.”지난 10일 KT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표이사 공개 모집 공고’의 마지막 문구다. KT 이사회가 9일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밀실 야합으로 CEO를 뽑는다”는 소리를 듣는 게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다. KT는 지원자 전원의 명단은 물론 후보자 명단, 단계별 심사 결과까지 전부 공개하기로 했다. 응모 자격은 ‘경영·경제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경력을 갖춘 분’이면서 ‘기업 경영 경험이 있는 분’이어야 한다는 정도다.
비슷하게 소유분산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포스코나 KT&G, 금융회사 가운데 이렇게 완전히 모든 단계를 공개리에 진행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구현모 대표나 KT 이사회 구성원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더 이상은 뭐라고 못하겠지’라는 심리가 그대로 읽힌다.
이런 아이디어가 처음은 아니다. 딱 3년 전에도 똑같은 제언이 있었다. 전임 황창규 회장이 퇴진을 발표하고 후임자를 뽑을 때다. KT의 전·현직 임원들이 ‘KT 바로세우기 제언’이라는 문서를 이사회에 전달했는데, 폐쇄적인 절차를 개방적인 절차로 바꾸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때는 별 반향이 없었지만, 3년 만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CEO 선출 과정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넘어 지원자 전원 공개, 단계별 심사 결과 공개로 이어지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기업의 CEO 선출을 ‘K팝 스타’ 뽑듯 하다 보면 인기투표에 가까워질 우려가 크다.
중간에 낮은 점수를 받고 떨어지는 모습이 공개돼도 상관없는 사람들만 지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부에서 좋은 사람을 스카우트해와도 모자랄 판에 한 해 매출 25조원짜리 회사의 수장을 이런 식으로 뽑는 게 정말 최선일지 의문이다.
이런 우려를 언급하면 KT 관계자들은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으며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그도 그렇다. 이사회 자체가 독립성을 부정당하고 허수아비 취급을 받는 상황에선 별 뾰족한 대안이 없다. 기존 이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교체를 시도하는 등 자본시장의 절차를 따르는 게 정석이다. 구 대표 연임에 무턱대고 반대 의사를 밝힌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이런 공모 절차를 예상이나 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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