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은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문학과 철학, 역사, 종교, 예술을 아우르며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에세이 작가로도 사랑받고 있다.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여러 에세이집을 냈다. 워낙 많은 작품을 펴내 주요 에세이집을 소개할 때 <동물원에 가기>는 미처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06년 발표한 <동물원에 가기>는 산문가로서 그의 자리를 확인해주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영국의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가 70주년을 기념해 70권으로 이뤄진 문고판 총서 ‘펭귄 70’을 출간할 때 마지막으로 포함시킨 작품이다. 당시 37세였던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이 카뮈, 카프카, 체호프, 피츠제럴드, 플로베르 같은 대가들의 작품과 함께 오른 것이다.
여러 문학작품 가운데 에세이가 특별히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로,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경험 많은 작가의 속 깊은 내면을 독서를 통해 공유한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 할 만하다. 나와 똑같은 공간에서 작가는 어떤 점을 느꼈는지 비교하고, 내가 아직 닿지 못한 곳에서 어떤 생각을 펼쳤는지 지켜보면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아홉 편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끈 에세이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로 시작하는 <슬픔이 주는 기쁨>이었다. 틈날 때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즐겨보는지라 특별히 관심이 갔다. 알랭 드 보통은 ‘호퍼 예술의 중심 주제는 외로움’이라고 단언했는데, 나도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호퍼적 공간’ ‘호퍼 스타일’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일관성 있게 그려냈는데,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호퍼적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민감해진다’고 기술했다.
작가의 에세이에서 나와 공통의 관심사를 찾으면 반갑기도 하지만 작품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깨달을 때가 정말 귀한 순간이다. 에세이에서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부쩍 자란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동물원에 가기> 이후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여러 책으로 가닿는 입구 역할을 해준다. 이는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을 추려내 독립적으로 완결성을 가지도록 손보고 보완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다방면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는 알랭 드 보통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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