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 10억엔(약 96억원)인 사타케의 신형 정미기는 한 시간에 8t의 쌀을 정미한다. 4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쌀뿐 아니라 밀과 콩 등 세계 3대 곡물의 가공은 물론 커피와 아몬드, 김의 선별에까지 활용할 수 있다. 사타케는 위생을 중시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일찌감치 불순물과 불량미를 골라내는 선별 기술에 매진했다.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의 작은 중소기업이 세계 1위 업체로 발돋움한 비결이다. 사타케는 북미시장의 98%, 아시아와 중남미 시장의 70%와 5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 7~8일 일본외신기자센터(FPCJ)의 후원으로 세계 최대 정미기 제조사 사타케, 일본 1위 디지털 종합 주물기업 캐스템, 일본 최대 청바지 원단(데님) 제조사 가이하라, 스니커즈 제조사 스핑글무브를 취재했다. 히로시마의 중소기업인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사양산업인 노동집약적 산업에 승부를 걸어 성공했다는 것이다. 다른 일본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과 동남아 기업에 밀려 사라지는 동안 이 기업들은 일본은 물론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인건비가 비싼 일본에서 이들이 살아남은 비결은 세 가지였다. 먼저 일본 고유의 장인정신을 고수하면서도 모태사업을 고집하지 않았다. 1893년 설립한 가이하라는 100년 가까이 남색 기모노만 만들던 가내수공업형 기업이었다. 서구화로 기모노 문화가 사라지고, 청바지가 유행하자 1970년 데님을 제작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모태사업에서는 남색 물을 들이는 염색 기술만 옮겨왔다. 오늘날 가이하라는 유니클로, 리바이스 등에 남품해 일본 데님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두 번째 비결은 품질이다. 한 켤레 20만~30만원의 고급 스니커즈를 생산하는 스핑글무브는 원래 이치만이라는 이름의 고무 생산업체였다. 값싼 고무장화를 양산하다가 20년 전부터 독자적인 브랜드 제품을 100%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차세대 사업 환경에 일찌감치 적응한 것도 히로시마형 강소기업들의 공통점이다. ‘지저분하고 힘든 기계회사’란 이미지 때문에 이직률이 높았던 캐스템은 직원 복지를 강화했다. 올해 쓰지 못한 휴가를 내년 휴가에 합산하는 휴가 이월 제도, 육아휴직에서 갓 복직한 직원이 업무 시간을 마음대로 정하는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했다. 이 덕분에 현재 캐스템의 신입사원 경쟁률은 10 대 1에 달한다. 여직원 비율은 30%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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