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약간의 훈련만 거치면 설계 엔지니어가 디자인하우스 작업에 곧바로 투입될 정도로 반도체 공정 난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인공지능(AI)이나 에이직(ASIC·주문형 반도체) 같은 시스템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종사자에게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이 요구되고 있다.
대형 파운드리일수록 미세 공정이 많아 단순히 설계 변환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설계자산(IP)을 자체 개발하고, 수많은 공정을 팹리스에 이해시키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잇는 ‘가교’로서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정규동 가온칩스 대표는 “하이엔드 공정에 대한 개발 난도가 높아지면서 팹리스, 파운드리, 후공정 사이에서 서로 다른 요구 사항을 조율하는 디자인하우스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한 디자인하우스가 TSMC와 삼성전자에서 동시에 물량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TSMC는 ‘TSMC 디자인하우스 생태계’, 삼성은 ‘삼성 생태계’, 중국 SMIC는 ‘SMIC 생태계’를 구축해 놓고 단방향으로만 거래하는 게 관례”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추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8년 TSMC를 벤치마킹해 세이프(SAFE: 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란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그중 몇몇 업체를 모아 TSMC의 VCA와 같은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 그룹을 결성했다. 2021년 에이디테크놀로지, 코아시아, 가온칩스, 하나텍, 알파홀딩스, 아르고, 세솔반도체 등 총 13개 DSP 업체를 확보했다. 이후 업체 간 인수합병(M&A) 끝에 지난해 에이디테크놀로지, 세미파이브, 코아시아, 가온칩스 등 총 9개 DSP 업체로 정리됐다.
DSP 기업들이 공격적인 채용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VCA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내 디자인하우스 고급 인력을 다 모아야 VCA의 가장 큰 업체인 대만 글로벌유니칩(GUC)과 알칩(Alchip)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애플, 테슬라, 구글, 아마존 등에서 자체 칩 개발 수요가 늘고 챗GPT로 인한 AI반도체가 확산하면서 디자인하우스의 위상은 더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