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맛집" 기업 구내식당 고급화 '열풍'

입력 2023-02-19 17:50   수정 2023-02-20 00:51


지난 17일 찾은 경기 과천 펄어비스 사옥 구내식당. ‘배꼽시계’가 정신없이 울리는 낮 12시가 다가오자 임직원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이날 점심 메뉴는 돈목살구이 삼겹살 정식, 텐동, 가쓰오두부도시락. 온라인 게임업체 펄어비스의 구내식당은 ‘펄식당’이라 불릴 정도로 과천 일대에서 맛집으로 통한다.

펄어비스와 같이 구내식당 메뉴를 고급화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등 기업들의 급식을 운영하는 업체는 급식단가 상승과 이용객 증가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내식당 이용객 급증
19일 급식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주요 오피스 지역 사업장들의 구내식당 이용객은 2021년 대비 20~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웰스토리가 운영하는 사업장의 급식 이용객은 27% 증가했고 아워홈(20%), 현대그린푸드(20%), 풀무원(34%), 신세계푸드(35%) 등도 이용객이 늘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하던 임직원들을 다시 사옥으로 불러들인 뒤 급식의 질을 대폭 높인 기업이 많다”며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른 것도 급식 이용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구내식당을 업그레이드하는 움직임은 네이버, 카카오 등 판교 일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끌었다. 국, 밥, 반찬 등 3종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식판 급식이 아니라 대게·바닷가재 등 해산물, 채식주의자를 위한 대체육 식단 등으로 다양화했다. IT 회사 한 관계자는 “개발직군의 경우 근무시간이 불규칙해 회사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며 “직원들 식사와 간식은 부족함 없이 챙겨주자는 것이 IT 기업들의 문화”라고 했다.

IT 업종에서 코로나19 창궐 이전부터 시작된 이런 흐름은 2020년을 기점으로 전통 제조업체 뿌리를 둔 대기업으로 확산했다. GS그룹의 경우 허태수 회장이 2020년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최고의 식사를 제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식당 인테리어를 확 바꾸고 메인 메뉴도 2개에서 3개로 늘렸다. 당시 경기 파주 세경고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장어덮밥, 수제버거 등을 내놔 ‘스타 영양사’가 된 김민지 씨도 이때 영입됐다. 위탁 급식업체가 있는데도 영양사를 직고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급식 메뉴 세분화
급식 메뉴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등 백반 중심의 식단에서 중식, 일식, 양식으로 세분화하고 베트남식, 멕시칸식 등 특별식이 종종 나온다. 저염식, 채식 등 개인 맞춤형 식단도 있다. 커피와 디저트에 힘을 주는 사례도 많다. 또 CJ프레시웨이가 운영하는 판교의 한 IT 기업에선 낮에는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주고 저녁에는 칵테일이나 와인을 제공한다.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샌드위치나 간편식의 인기도 부쩍 높아졌다. 삼성웰스토리의 경우 운영하는 149개 사내식당에서 지난해 4월부터 한 달간 렌틸콩, 귀리, 콜리플라워 등을 활용한 라이스 메뉴 등 건강식단을 선보이는 ‘웰핏 챌린지’를 펼치기도 했다. SK하이닉스 경기 이천 사업장에서는 신세계푸드가 대체육인 ‘베러미트’를 활용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제공한다.

이같이 구내식당 메뉴가 세분화되면서 급식업체들 사이에선 일정 메뉴를 대량 공급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급식업체 한 관계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채로운 메뉴를 제공하려면 식자재 관리가 까다로워져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며 “메뉴 세분화는 충분한 식수가 확보된 대기업 위주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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