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밤 10시 경기 광주의 한 쿠팡 물류센터. 물건을 나르던 아르바이트 대학생 김모씨(23)는 노조에 가입했는지를 묻는 기자에게 정색을 하며 반문했다. 김씨는 틈날 때마다 수도권 물류센터를 돌며 하루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과 학비를 번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도 노조 가입이 가능하다.그는 “노조 활동을 할 시간에 차라리 배달 앱으로 돈을 더 버는 게 효율적”이라며 “알바 앱으로 일감을 비교해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닌다”고 귀띔했다.
플랫폼 현장 근로자들의 가장 특징은 독립성이다. 한 단기 근로자는 “플랫폼 기업을 평생직장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잠깐 모인 뒤 헤어질 사이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근로 희망자는 ‘쿠펀치’란 앱을 통해 전국 물류센터의 일감을 찾는다. 각각의 물류센터는 저마다 필요한 구역별(입고·재고 조사·출고·허브) 인원을 파악하고, 날짜·시간별로 부족한 인력을 앱에 공개 공고한다. 이를 본 근로 희망자들이 신청하고, ‘묵묵히’ 일하다가 헤어지면 되는 식이다. 대형 선반에 쌓인 물건의 수와 종류를 살피는 재고 조사를 하는 동안 주변 동료들과 나눈 사적 대화는 거의 없었다. 일부는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일할 만큼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지시를 하는 이도 비슷한 계약직이라서 상하관계란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게 또 다른 단기 근로자의 말이다.
배달 플랫폼 기업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 배달의민족에서 라이더를 직고용하기 위해 ‘딜리버리앤(N)’을 출범시켰지만 7개월이 지나도록 당초 목표 인원(50명)을 못 채웠다. 배달의민족 측은 “기업과 상사에게 얽매이기 싫다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플랫폼산업 종사자들은 자신의 업을 ‘계속하는 일자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은 냉·난방기 시설 부재, 쉼터 열악 등 근무 환경 개선을 주장하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근로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취업준비생 이모씨(28)는 “집에서 여러 알바 앱을 통해 비교하고 장단점을 분석한 뒤 이곳을 선택했다”며 “쿠팡의 근무 환경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찾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숙제가 조합원 유치라면, 회사의 가장 큰 과제는 장기 근속자 확보다. 사이버대 등록금 지원, 지인 일자리 소개 시 한 명당 70만원 지급 등 여러 인센티브를 내걸고 있다. 그럼에도 양측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평가다.
젊은 세대들이 지배하는 플랫폼 기업은 기성 노조와 일반 기업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년 보장, 군대식 단체생활 등 노조가 결속되기 쉬웠던 전통 제조업이 주도해온 전투적 투쟁 방식과 획일화된 집단화의 한계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노조는 전투를 통한 쟁취를 중시하다 보니 젊은 세대와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며 “기존 노조가 개혁하고 변화해야 모든 노동자에게 득이 된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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