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 리스트: ①심장 이식수술 받기(완료) ②타이거 우즈 만나기 ③오거스타GC(마스터스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에서 골프 치기….”
19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총상금 2000만달러) 3라운드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CC(파71·7322야드)에선 선수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갤러리가 있었다. 자신의 소원을 적은 팻말을 들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를 응원한 소녀팬(사진)이었다.
첫 번째 소원(심장 이식수술)을 이룬 소녀팬의 두 번째 버킷 리스트(우즈를 만나는 것)는 곧 골프황제에게 전달됐다. 우즈는 17번홀을 끝낸 뒤 소녀를 찾아가 팻말에 있는 두 번째 버킷 리스트에 ‘미션 완료’ 표시를 직접 그렸다. 소녀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신의 사인이 담긴 골프장갑을 건넸다. PGA투어는 이날 공식SNS를 통해 “꿈이 이뤄졌다”는 코멘트와 함께 이 장면을 전했다.
소녀의 세 번째 소원도 이뤄질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오거스타GC는 300명 안팎의 회원과 세계 최고 골퍼들이 실력을 겨루는 마스터스의 출전자에게만 라커 열쇠를 건네기 때문이다. 소녀가 직접 오거스타GC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건 어렵지만, 응원하는 선수가 오거스타GC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즈는 이날 호쾌한 드라이버샷과 날카로운 아이언샷을 버무려 4언더파 67타를 쳤다. 2020년 11월 열린 마스터스 1라운드(4언더파 68타) 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이글 1개에 버디 3개를 잡고 보기는 1개로 막았다. 중간합계 3언더파 210타로 공동 26위에 랭크됐다. 전날보다 순위를 32계단 끌어올렸다.
우즈의 오른쪽 다리는 강한 몸통회전을 충분히 받쳐줄 정도로 탄탄했다. 지난해 컨디션 악화로 기권한 PGA챔피언십(5월)과 커트 탈락한 디오픈(7월) 때보다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살아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12월 족저근막염을 이유로 자신의 재단이 주최하는 히어로 월드 챌린지 출전을 포기한 그가 두 달 만에 정상급 선수로 돌아온 것이다.
우즈는 이번 대회 2라운드에선 불안한 경기력을 보였다. 1라운드 마지막 3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냈지만 2라운드에서 3오버파를 치며 주춤했다. 2라운드까지 합계 1오버파로 커트 통과 기준에 걸친 상태에서 일몰로 경기가 중단됐다. 자력으로 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잔여 경기 결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공동 58위를 기록하며 턱걸이로 3라운드에 진출했다.
3라운드의 우즈는 다른 사람이었다. 이날 10번홀(파4)에서 경기를 시작한 그는 첫 홀부터 4.5m 버디퍼트에 성공했고 14번홀(파3)에서는 프린지에 걸친 공을 약 7.5m 거리 홀에 집어넣어 버디로 연결시켰다. 1번홀(파5)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티샷이 316야드를 날아 오른쪽 러프에 떨어졌다. 핀과의 거리는 190야드. 6번 아이언을 잡은 우즈는 공을 핀 90㎝ 옆에 붙여 ‘탭 인 이글’을 잡아냈다. 장타에 날카로운 아이언샷까지 흠잡을 데 없는 플레이였다. 이날 우즈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309야드였다. 최고 거리는 332야드. 페어웨이 적중률 64.29%, 그린 적중률 66.67%로 각각 전체 13위와 9위에 올랐다.
우즈는 경기를 마친 뒤 “솔직히 온몸이 아프지만 예전과 같은 경기를 펼쳐 기쁘다”고 말했다. 캐디 조 카라바는 “라운드가 끝났는데도 우즈가 피곤해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우즈의 몸이 100% 회복된 건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 눈에 띄게 절룩인 그는 “지금도 발뒤꿈치가 조금 아프다”며 “샷과 치핑, 퍼팅을 하는 것보다 이동하는 게 (내게는) 더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마스터스 출전 여부에 대해선 “이번 대회가 끝난 뒤 얼마나 회복될지 봐야 한다”며 “다음주 후반께 몸이 완전히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