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바늘구멍’에 비유된다. 국내 100대 기업의 전체 직원 대비 임원 비율은 지난해 기준 0.83%. 직원 100명 중 임원은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제조업에서 생산, 영업 등 현장 직원이 관리직으로 전환해 임원까지 오르는 비율은 극히 낮다.
이렇게 문턱이 높은 임원 승진에서 현장직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업종이 있다. 바로 외식업이다. 외식기업에서 매장·영업직,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한 직원들이 본사 관리직으로 전환되고 임원까지 올라가는 ‘현장 신화’가 잇따르고 있다.
CJ푸드빌은 지난 15일 외식사업본부장에 신은석 전 외식사업부장을 임명했다. 그는 빕스 등촌점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최연소 점장, 최연소 영업팀장을 거쳐 외식사업 총괄직까지 올랐다. 한 외식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제조업은 생산, 영업 등 현장직이 본사 관리직으로 들어오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외식업은 다르다”며 “최근 들어 현장 우대 인사 트렌드가 더욱 짙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주요 계열 대표이사 전원이 현장 영업 출신으로 채워진 곳도 있다. 죽 프랜차이즈 1위 본그룹은 이진희 본아이에프 프랜차이즈부문 대표, 이진영 순수본 대표, 임미화 본푸드서비스 대표가 매장 매니저 등으로 시작했다.
이런 흐름이 강화된 데엔 최근 현장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인력난도 영향을 미쳤다. 인력이 부족할수록 현장 사정을 정확히 파악해 능수능란하게 지휘할 수 있는 책임자의 역량이 더 요구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음식서비스 업종의 부족 인원(정상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인력 대비 부족 인원)은 6만188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했다.
맥도날드는 두 달에 한 번 아르바이트(크루)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프트 매니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학력, 나이, 성별, 장애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 ‘열린 채용’ 방식으로 크루를 뽑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누구나 맥도날드 정규직이 되고 임원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경우 본사에서 근무하는 팀장급의 30%, 임원의 25%가 매장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SPC도 최근 5년간 현장 근무자 중 약 150명을 본사 사무직 직원으로 전환했다. 이들 기업은 수시 공모나 추천을 통해 매장직원이 관리 업무로 직무 전환을 할 수 있는 길을 터놨다.
이재인 CJ푸드빌 안전경영센터장은 “외식업이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사업이 아니라 브랜드를 기획하고 매장을 디자인하고, 고객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 사업’인 만큼 다양한 기회와 역할이 존재한다”며 “매장 경험은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원동력이자 밑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빕스’ 홀매니저로 입사했던 이 센터장은 주방근무까지 자원하며 현장 구석구석을 누벼 회사 매장직 직원들에겐 ‘롤모델’로 꼽힌다.
정윤조 스타벅스 운영 담당 상무는 “외식사업의 핵심은 매장”이라며 “현장 업무가 당장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각에선 외식업에서 매장 신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현장의 업무 환경을 보다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현장을 존중하는 기업 문화와 업무 환경 개선, 직무 전환 교육 시스템이 필요한 곳이 여전히 많다”고 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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