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기름밥 못 먹여" 실습생 끌고나간 엄마…주저앉은 中企사장

입력 2023-02-20 18:19   수정 2023-02-28 20:25



수도권 한 제지업체 A대표는 직업계고 실습생 부모로부터 모욕당한 뒤론 교복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공장을 찾아온 어머니가 “내 자식이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일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근무 중이던 자녀를 끌고 나간 것이다.

직업계고 졸업생이 중소기업 현장을 기피하는 데는 고졸 출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중소 제조업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미친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식 사고가 여전한 탓에 중소기업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된다는 설명이다.
막힌 직업 교육, 멈춘 중기 성장
직업계고 졸업생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수급 미스매칭(불일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서울의 한 전자 부품업체 B대표는 서울지역 공업고 세 곳에서 받은 졸업예정자들에게 병역 특례까지 제안했지만 실습이 끝나자 모두 그만둬 망연자실했다. B대표는 “직업계고 학생 대부분이 그만둘 것이라는 걸 알기에 새로운 기술 전수는 포기하고 허드렛일만 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직업계고생의 현장실습 참여율은 27.4%로 6년 전(56.5%)에 비해 반토막 났다. 조기 취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직업계고 학생 중 3분의 2가량이 직업 현장을 접하지도 못한 채 졸업하는 것이다. 2018년 교육부가 제주 실습생 사망 사고를 계기로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하고 실습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인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다. 경기 남부의 한 금속업체 대표는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현장에 온 실습생들이 전동 지게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가볍게 부딪히곤 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며 “실습생들은 취업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각종 통계로도 직업계고 졸업생의 현장 기피가 확인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직업계고 출신 취업자의 1년6개월 후 유지취업률은 61.9%에 불과했다. 이직률까지 반영하면 취업자 절반가량이 1년 이상 한 직장에 근무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중소기업의 부족 인력은 56만 명에 달한다.

그나마 취업을 택하는 학생들도 제조업은 후순위다. 정보기술(IT), 반도체, 소프트웨어 등 인기 분야에만 눈길을 줄 뿐이다. 한 뿌리기업 대표는 “직업계고 중 열처리, 표면처리, 단조 등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다”고 혀를 찼다.
지방·전문대와 인력 뺏기 경쟁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전문대의 신입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직업계고 출신 인력 고갈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직업계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 비율은 역대 최고치인 45.1%를 기록했다. 지방대학과 전문대들이 공격적인 신입생 유치에 나서면서 중소기업과의 인력 확보전은 격화하고 있다. 경남의 한 공업고 교사는 “학생 수가 줄어들다 보니 대학들도 어떻게든 신입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하려고 ‘입학 시 100만원’ 등 갖가지 유인책을 편다”며 “대놓고 고졸 학력으론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직업계고 학생의 제조 현장 기피를 해소하기 위해선 고졸 출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정화 한양대 명예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은 대학 진학률이 20~30%에 불과하다”며 “고졸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해야 하고 ‘선취업·후진학’제도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때와 소음, 먼지로 대표되는 옛 중소기업 이미지를 바꿔 안전한 일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중소기업 장기재직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직업계고 졸업생의 취업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소기업 장기 재직 시 목돈 마련을 지원해주는 ‘내일채움공제’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상반기에 직업계고 발전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안대규/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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