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명문 옥스퍼드대학교가 수십만 명의 죽음을 야기한 제약회사의 소유주 가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해당 가문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과는 상반된 행보라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퍼듀제약의 소유주인 새클러 가문이 지난 2년 간 옥스퍼드대와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새클러 가문이 소유했던 퍼듀제약은 1999~2019년 50만명에 달하는 약물중독 인명 피해를 일으킨 아편계 진통제인 옥시콘틴(오피오이드 성분 함유)을 개발 및 판매한 기업이다.
당시 사건 이후 2021년 퍼듀제약과 새클러 가문이 총 45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퍼듀제약사는 최종 파산했다. 이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들은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건물의 이름을 바꾸는 등 새클러 일가와 절연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옥스퍼드대는 이들과 유착관계를 이어왔다. FT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옥스퍼드대는 새클러 가문으로부터 연구 자금을 지원 받는 등의 대가로 '새클러 도서관' 등의 명명권을 유지해주기로 했다. FT는 "새클러 가문은 옥스퍼드대의 단과대인 우스터칼리지, 애쉬몰리언 박물관 등 산하 기관들에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꼬집었다.
구체적으로 새클러 가문의 2개 재단은 1991년부터 옥스퍼드대에 최소 1000만파운드(약 155억원)를 기부했다. 2021년엔 옥스퍼드 개발 신탁이 새클러 가문의 신탁회사로부터 5만파운드 가량을 받아 우스터칼리지 등의 연구 자금에 사용했다. 옥스퍼드대와 새클러 가문의 유착은 다른 세계 명문대의 행보와도 어긋난다. 영국의 에든버러대학교와 글래스고대학교, 미국 예일대학교 등은 모두 새클러 가문과 선긋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 관계자는 "(새클러 가문과의) 관계와 이에 대한 인식 여부 등에 관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앞으로 몇달 안에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클러 가문의 신탁회사는 "우리는 옥스퍼드대가 어떠한 장애물 없이 연구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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