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돈 호플러가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 가공업체가 몰려 있다고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을 붙였지만 시작은 스탠퍼드대의 터먼 학장이 자기 돈까지 쥐여주면서 제자들에게 창업하라고 등 떠밀었던 1939년이다. 선생이 학생에게 공부 그만두고 창업하라고 했으니 한국이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거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그렇게 시작한 휴렛팩커드(HP)의 출발점인 차고를 실리콘밸리의 발생지로 명명했다. 그 후로도 스탠퍼드대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어지간하면 창업하라고 강권했고, 수틀리면 교수가 직접 창업해 세상을 바꿔놓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매우 훈훈한 미담이다.
무대의 뒷면은 어떨까? DARPA(국방고등과학연구계획국)라는 데가 있다. 직접 연구는 안 하고 말도 안 되는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투자 3년 안에 결과물이 나오면 투자 실패로 판정한다. 충분히 ‘미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다! 매년 4조원씩. 더 놀랍다! 그들이 없었으면 실리콘밸리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58년에 출범한 그들의 지원으로 나온 게 인터넷, 마우스, GPS, 탄소섬유, 수술로봇, 드론, 자율주행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2006년에는 이름까지 사촌 격인 IARPA(정보고등과학연구계획국)를 창설했고 2019년에는 그곳의 신기술을 군에 도입하겠다고 국방혁신단(DIU)도 만들었고 아예 본부를 실리콘밸리에 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중요연구소를 거기에 두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미래가 실리콘밸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가 대놓고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신자유주의란 말인가! 많은 국가가 실리콘밸리를 모방하려고 무수히 시도했지만 대부분 아류로 끝났다. 그런 뒷면을 몰랐으니 당연하다.
우리 대학들은, 우리 젊은이들은 왜 그들처럼 못하냐고 타박하지 말아야겠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기업의 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상황이 다를까? 아프리카의 마을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스타트업 육성에 할당된 정부 예산을 늘려가지는 못할 망정 상당액 삭감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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