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분야에서 영상분석 인공지능(AI)의 주 무대는 질병 진단이다. AI가 자기공명영상(MRI),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해 암이나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는지 판독해낸다. 글로벌 AI 진단업계가 겨냥한 시장이다. 루닛은 AI 영상분석의 궁극적 쓰임새를 진단이 아니라 치료 영역에서 찾고 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AI의 영상분석 능력이 항암제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가설을 하나씩 입증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신약 개발사들은 물론 AI 진단업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주장”이라고 했다.
복수의 국내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에는 루닛 스코프를 연구개발(R&D)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루닛 스코프를 활용해 PD-L1 발현율을 확인하거나 AI 기반 바이오마커(생체 표지자)를 찾아 맞춤형 항암제를 개발한다. 복잡한 화합물의 구조를 예측하고, 최적의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기존 의료 AI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서 대표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 한 곳이 항암제 개발에 루닛 스코프를 테스트해보고 있다”며 “이르면 상반기 내에 솔루션 공급 정식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밝혔다.
판독 대상도 늘려간다. 현재는 PD-L1 발현율만 확인하지만, 유방암 환자를 세분화할 수 있는 사람상피세포 성장인자수용체2(HER2), 에스트로겐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수용체(PR) 발현도 분석할 계획이다. 이들은 유방암 환자를 구분할 수 있는 대표적 바이오마커다. 서 대표는 “루닛이 자체 발굴하는 디지털 바이오마커도 있다”고 했다.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주요국 정부가 추진하는 검진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지난해 말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州) 정부가 유방암 검진 사업에 루닛 인사이트를 낙점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 대표는 “기업과 정부 간 거래(B2G)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보건소, 군 병원 등 공공 분야 진출을 모색할 계획이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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