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여행을 갈 땐 미리 환전한 외화 현금 한 뭉텅이에 해외 결제가 되는 비상용 카드 한두 장을 가져가는 게 보통이었다. 환전하는 시점에 환율이 내리면 행운, 오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좀더 보편화된 카드 결제는 현금을 직접 들고 다니는 것보다 안전하고 나중에 다시 환전하기도 난처한 자투리 돈이 남지 않는다는 점 등이 편리했지만, 얼마나 붙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각종 수수료가 마음에 걸리곤 했다.
이런 불편을 개선하겠다며 나온 서비스가 외화 충전식 카드다. 코로나19로 굳게 걸어 잠겼던 국경이 열리고 해외 여행이 풀리면서 최근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카드와 하나은행이 내놓은 해외여행 플랫폼 서비스 ‘트래블로그’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약 반 년 만에 이용자가 60만 명을 넘어서며 업계 선두로 떠올랐다.
최근 서울 중구 하나금융 본사에서 만난 트래블로그 개발자 박정일 하나카드 하나머니사업부장은 “트래블로그로 실현하고 싶었던 것은 소비자의 ‘환율 자기 결정권’”이라며 “외화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환율로 간편하게 바꿔서 쓸 수 있다는 점이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트래블로그는 환전 수수료 없이 원할 때 바로 하나머니 앱으로 외화를 충전(환전)해두고 해외 어디서나 무료로 인출·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외화 하나머니를 충전해두면 전용 실물 카드도 발급받을 수 있다. 과거에는 은행 외화 계좌 개설이 필수였지만 트래블로그는 휴대전화 본인 인증만 하면 된다. 단 하나은행이나 증권·저축은행의 실명 계좌 하나는 등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환율로 수수료 없이 미리 충전하고 결제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하나카드의 '비바 X 체크카드' 같은 기존 외화 체크카드는 해외에서 결제할 때 시점의 환율이 적용돼 은행 원화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보통 국내 카드로 해외에서 결제하면 건당 0.5달러의 서비스 수수료와 결제액 1% 상당의 국제 브랜드 수수료(비자·마스터카드·아멕스 등)가 붙는다. 비바 X 체크카드처럼 이런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상품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원화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며 외화로 환전되는 과정에서 소액이라도 환전 수수료가 붙는다.
또 결제 시점이 아닌 카드사가 해당 건을 매입하는 시점에 돈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 요즘처럼 환율이 요동치는 시기엔 결제할 땐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이었는데, 돈이 실제로 빠져나갈 땐 1280원이 적용되는 뼈 아픈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트래블로그는 가상 계좌에 선불전자지급수단인 하나머니로 원할 때 외화를 충전해두고 결제하면 결제액 그대로 돈이 빠져나간다. 원하는 환율로 환전해 그대로 결제하지만 실제 현금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현금과 카드 결제의 장점을 합쳐놓은 셈이다. 전 세계 모든 마스터카드 가맹점에서 결제 가능하다.
박 부장은 "일반 카드나 기존 외화 직불 카드(멀티 커런시 카드)들은 계좌 개설 같은 절차가 번거로운데다, 결국 수수료가 그 안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외에서도 카드만 들고 다니는 게 가장 편리한데도 소비자들은 막연한 수수료의 공포를 벗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환율로, 해외에서 100달러를 쓰면 100달러 그대로 빠져나가는 카드를 만들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출시와 함께 3만2000명이 가입했던 트래블로그는 2월 현재 63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지난 7개월 새 트래블로그를 거쳐간 환전액은 모두 1315억원에 이른다. 지난달에만 334억원이 환전됐다.
현재 트래블로그는 8개 주요 통화에 대해 100% 무료 환전을 제공한다. 일본 엔화, 미국 달러, 유로화, 영국 파운드에 이어 최근 위안화와 싱가포르달러, 캐나다달러, 호주달러도 무료 환전이 가능해졌다. 달러로 충전해둔 돈은 미국이 아니어도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가령 달러를 충전해둔 트래블로그 카드를 베트남에서 결제·인출하면 자동으로 매매기준율에 따라 별도 수수료 없이 달러에서 베트남 동으로 환전된다.
국내 다른 비슷한 서비스들은 '수수료 제로'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소액의 환전 수수료가 붙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환 취급 은행이 공시하는 매매기준율이 아닌 해당 서비스만의 자체 산출 환율을 적용하는데, 이 안에 보이지 않는 수수료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트래블로그는 시장 평균 환율인 매매기준율을 그대로 적용하고 환급 수수료 1%도 투명하게 공시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로그는 최근 '목표환율 자동충전' 서비스를 선보였다. 원하는 환율을 설정해두면 자동으로 환전이 되는 기능이다. 가령 현재 1300원인 원·달러 환율이 1270원이 되면 일정액이 자동 충전되도록 미리 예약을 걸어둘 수 있다. 박 부장은 "환율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드리겠다는 트래블로그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시 대응이 중요한 해외 서비스 특성을 고려해 '24시간 365일' 고객센터를 운영한다는 것도 트래블로그가 강조하는 점이다. 진수현 하나카드 상품서비스섹션 대리는 “향후 가계부 기능과 실결제자의 해외 가맹점 후기를 공유하는 SNS 기능 등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며 “해외에 나갈 때 트래블로그만 있으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