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경기 파주운정3지구 주택 용지 4필지(7만3721㎡)를 6535억원에 분양받은 A시행사는 현재까지 중도금과 잔금을 포함해 총 2178억원을 연체하고 있다. 분양받은 지 4년이 되도록 대금의 33%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접 필지를 받은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도 290억원 중 97억원을 미납 중이다. 이들 회사는 올해부터 연 8.5%의 연체료를 내고 있다. 분양 당시 경쟁률이 193 대 1에 달한 파주운정3지구는 이제 LH 분양 택지 중 땅값 회수가 가장 안 되는 악성 사업장이 됐다.
한때 부동산 개발 업체들에 ‘기회의 땅’으로 불린 공공택지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부터 분양받은 땅값을 내지 못하는 건설업체가 급증하면서 LH가 못 받은 미수금이 14년 만에 최대 규모로 늘었다. 주택 분양시장 악화로 금융권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꺼리자 ‘돈을 빌려 땅값을 대는’ 구조가 막힌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공공택지는 한때 중견 건설사에 성장 사다리였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서 PF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분양받은 공공택지가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는 상황이다. 최근 금융권의 부동산PF 금리는 연 12~15%에 달한다. 이마저도 우량사업장에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LH의 분양금 미납금 연체 금리는 지난해 연 6.5%에서 올해 8.5%로 올랐지만, PF 금리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 개발업체 대표는 “PF도 안 되지만 금융권의 고금리도 부담스러워 차라리 연체료를 내면서 버티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분양받은 기업이 토지 대금을 장기간 연체하면 사업자 지위를 잃는다. LH는 대금을 6개월 이상 연체 시 독촉, 2단계 기한이익 상실 통보, 3단계로 계약 해제를 통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 연체 사업자에 곧바로 계약 해제권을 들이밀기도 어려운 처지다. 계약을 해제하고 다시 땅을 매각하기가 여의치 않아서다. LH가 미분양, 분양 준비 등을 이유로 보유하고 있는 주택용 토지는 전국 32필지에 달한다. LH 측은 “원칙이 있긴 하지만 실제 계약 해제 여부는 부동산 경기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사업자들이 ‘연착륙’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대금 납입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정책연구실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중도금 잔금 부담을 경감해주고, 이미 분양된 택지의 제삼자 전매를 허용하는 등 연착륙을 위해 당국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토지사용승락서 재발급 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LH의 각 지역본부는 분양금의 15~20%를 납부한 수분양자에게 '토지사용승락서'를 발급하는데 통상 3개월마다 재발급해준다. 사실상 토지사용승락서 유효기간을 짧게 두어 수분양 기업들의 대금 납입을 압박하겠다는 용도지만, 요즘과 같이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토지사용승락서 발급에 대한 유연함을 두어 사업 지속의 의지가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인허가를 통해 본PF로 넘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체되어 있는 사업 지속도 가능하고 LH도 토지대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김정재 의원은 “택지 미분양이 심각해지면 신규 분양과 입주 물량이 줄어들고, 결국 현 정부 주택공급 정책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금융권의 대출 지원뿐만 아니라 LH도 택지 수분양 업체들과의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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