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경계를 보통 ‘국경선(線)’이라고 한다. 이 선 너머는 남의 나라고, 안쪽은 우리 나라다. 비무장지대(DMZ)는 예외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사실상의 국경 역할을 하지만 ‘선’이 아니라 너비 4㎞에 달하는 ‘면(面)’이다. DMZ를 머리 위에 두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그곳은 이제 익숙한 장소지만, 외국인들에겐 생소하기 짝이 없다. 지난 1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바젤 평화포럼에 참석한 사람들은 DMZ를 이렇게 불렀다. ‘국경의 왕(The border of border).’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국경’이 만들어진 건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 때다. 이 협정에 따라 남과 북은 휴전선에서 남북 측으로 각각 2㎞ 떨어진 곳에 철책을 설치한 뒤 그 사이에서의 군사활동을 일절 금지했다. 이렇게 너비 4㎞의 지역은 비무장지대가 됐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이곳은 남북한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 됐다. 남북은 경쟁적으로 감시초소(GP)를 세웠고, 완전무장한 병력을 파견해 순찰했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더 무장 지대’”라는 조소가 나오는 이유다.
인간의 대립은 갈수록 치열해졌지만, 반대로 DMZ의 동식물은 번성했다. 인간의 환경 훼손을 오랜 세월 피해 가면서 ‘한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은 야생 동물들의 낙원’이 됐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은 5000종에 달한다. 한반도 생물 종의 20%에 해당하는 수다. 세계적인 멸종 위기 동물과 천연기념물들이 숨쉰다.
역설(逆說)은 예술이 가장 사랑하는 주제 중 하나다. 국경이지만 선이 아니라 면이고,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상징하는 ‘역설의 땅’ DMZ가 전 세계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일깨운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백남준과 이불, 영국의 조각가 앤터니 곰리 등 국내외 거장들이 DMZ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2012년부터 열고 있는 ‘리얼 디엠지(DMZ) 프로젝트’는 이런 작품들을 모은 전시이자 미술 운동이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국가보훈처와 구글이 손을 맞잡고 온라인 전시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준비했다. 60개의 온라인 전시관에 5000여 점의 컬렉션을 한데 모았다. 이곳엔 전쟁을 살아낸 개인들의 일상, 비망록부터 인류애와 연대의 힘을 보여준 세계 각국 지원단의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최초로 공개되는 DMZ의 경이로운 자연과 예술가들이 꿈꾸는 DMZ의 평화로운 미래까지…. 한국의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이 안에 있다.
성수영/김보라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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