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통령이 꿀벌 챙기는 美, 관련학과도 없는 韓

입력 2023-02-23 17:38   수정 2023-02-24 00:15

‘100억 마리.’

올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꿀벌 수다. 지난해 자취를 감춘 78억 마리를 합치면 불과 2년 만에 200억 마리 가까운 꿀벌이 사라지는 셈이다.

상황은 심각한데 정부 대응은 느긋하다. 꿀벌군집붕괴현상(CCD)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을 정도로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지금껏 대비책이 없다. 지난해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관계 기관들이 모여 조사한 뒤 연구 계획을 발표했다. 8년간 484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안이다. 문제는 이 예산에 꿀벌의 주요 먹이인 아까시나무 등 밀원을 복원하는 예산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순수 연구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기사가 나간 뒤 지난 22일 발표된 대책은 응애 방제에 국한된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꿀벌 실종은 세계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비상을 걸 만큼 긴박한 문제다. 한국 양봉은 특히 더 시간이 많지 않다. 베트남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값싼 벌꿀이 들어오면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베트남 벌꿀은 한국산 가격의 5분의 1 수준이다. 2029년부터 관세도 없어지면 한국 꿀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양봉이 없어지는 것은 국산 꿀을 먹지 못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화분 매개가 줄어들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멸종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곤충, 초식동물, 결국은 인간에게까지 피해가 올 수 있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가 화분 매개의 가치를 연간 300조~739조원으로 추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는 꿀벌 지키기에 ‘올인’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4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관련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과 주요 회원국은 관련 위원회도 운영 중이다. 꿀벌은 먹이(식물학)와 생태(곤충학), 꿀(식품학) 등 다양한 학문과 부처가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에는 컨트롤타워는커녕 꿀벌 관련 학과조차 하나 없다. 중장기적인 로드맵부터 세워야 한다. 기초 학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도 필수다. 최소한 전국 국립대에는 양봉 분야, 화분 매개 등에 대한 교육 체계를 마련하고 정부 차원의 꿀벌연구센터 건립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꿀벌이 모두 사라지면 기회는 없다. 신속하고 담대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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