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게 없다"…리모델링 손 떼는 건설사

입력 2023-02-23 17:41   수정 2023-02-24 00:58


재건축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수도권 정비사업 시장에서 리모델링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리모델링을 선택한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재건축으로 돌아서는 가운데 건설사들은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미 확보한 리모델링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쌍용건설, 리모델링 사업 연달아 포기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쌍용건설은 최근 경기 군포시 설악주공8단지 리모델링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했다. 설악주공8단지 리모델링 조합이 작년 말 쌍용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지 두 달 만이다. 설악주공8단지 리모델링은 수평·별동 증축을 통해 가구 수를 현재 1471가구에서 1691가구로 늘리는 사업이다. 다음달 총회에서 시공사를 확정하려던 조합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건설사 10여 곳과 접촉 중”이라며 “이르면 상반기에 새 시공사를 선정한 뒤 안전진단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리모델링 분야에서 1위의 준공 실적을 보유한 쌍용건설은 최근 서울 성동구 신동아 아파트 리모델링 시공권도 자진 반납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설악주공9단지의 경우 내부 심의에서 단지 지반이 암석이어서 공사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급격한 금리 인상과 건설 원자재값 상승을 고려해 신규 수주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1~2년 전만 해도 건설사들은 강력한 재건축 관련 규제로 일감이 줄어들자 전담팀을 꾸리는 등 적극적으로 리모델링 수주에 나섰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재건축 관련 규제가 잇따라 완화되고,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허용해 주는 ‘1기 신도시 특별법’까지 발표되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현대건설도 지난해 서울 강남구 대치2단지 리모델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재건축을 요구하는 주민 목소리가 커지자 수주를 포기했다.

준공 후 15년이 지난 아파트의 기본 골조만 남긴 채 가구당 면적을 늘리고 별도 동(棟)을 짓는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시공이 어렵고 공사 단가도 높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사를 정한 리모델링 사업장의 평균 공사비는 3.3㎡당 694만2000원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평균(561만7000원)보다 23.6% 높았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 담당 임원은 “공사 단가는 높은데 현행법상 가구 수는 기존 대비 최대 15%만 늘릴 수 있어 일반분양 물량을 분양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 특별법’ 도입 서둘러야”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방향을 트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강선14단지두산에선 이달 초 1기 신도시 특별법 발표 이후 일부 주민이 재건축 추진을 요구하며 ‘리모델링 반대 동의서’를 모으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고양시에서 처음으로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했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추진 단지 20여 곳 가운데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서 리모델링을 하면 재건축으로 새 아파트를 지었을 때보다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성동구 대림1차 아파트와 강동구 리모델링 1호인 프라자 아파트는 각각 작년 9월 2006년부터 운영해온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하고, 본격적인 재건축 절차에 들어갔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리모델링은 내력벽 철거가 허용되지 않아 아파트 평면 구조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고, 천장고도 기존보다 낮아지는 등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일반분양 물량이 적다 보니 공사비가 늘어날수록 조합원들이 내는 분담금이 재건축에 비해 더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정부가 재건축 활성화에 집중하다 보니 리모델링 규제 완화는 뒷전으로 밀려 있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공동주택 리모델링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경관 심의,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박시온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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