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비무장지대서 작품 만드는 것

입력 2023-02-23 17:45   수정 2023-02-24 09:02

“비무장지대(DMZ)에서 제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는 게 소원입니다.”

세계적인 미술가 중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목록에는 영국의 조각 거장 앤터니 곰리, 2008년 베이징올림픽 시각특수예술 총감독이었던 중국의 차이궈창,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카르스텐 횔러도 포함된다.

덴마크 출신의 현대미술 그룹 슈퍼플렉스는 아예 DMZ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제작해 접경지대 철도역인 도라산역에 기증하고 ‘무료 배송’까지 해주기로 했다. 삶과 죽음,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역설의 땅’ DMZ가 그만큼 예술가들의 영감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키는 소재라는 증거다.
예술이 된 DMZ, 온라인으로 만난다
이처럼 세계 예술가들이 DMZ를 사랑하게 된 데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58)이 2012년 시작한 ‘리얼DMZ프로젝트’가 큰 기여를 했다. 리얼DMZ프로젝트는 DMZ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일종의 비정기 기획전시 프로젝트다. 김 감독은 “DMZ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미술로 보여주고 평화에 기여하고 싶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며 “리얼DMZ라는 말은 비무장지대가 ‘진짜로 무장하지 않는 지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리얼DMZ프로젝트는 해외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하는 전시’로 자리잡았다. DMZ라는 주제부터가 외국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다 백남준·문경원·안규철·이불·전준호·정연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영국 덴마크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전시해달라”는 러브콜이 쏟아지게 됐다.

구글이 2019년 “온라인에서 전시를 열고 싶다”고 리얼DMZ 프로젝트 측에 연락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구글은 그해 3월부터 5월까지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렸던 오프라인 전시에서 사진을 찍어갔다. 전시에 참여한 최수영 스페이스포컨템포러리아트 대표는 “당시 구글에서 파견한 사진 작가들이 수천 장 넘게 사진을 찍어갔는데, 구석구석까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찍어서 놀랐다”고 했다. 이 수많은 사진을 재조합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 결과물이 지금 ‘구글 아트 & 컬처’ 사이트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DMZ프로젝트의 온라인 전시다.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뷰’ 형식으로 실제 전시장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구현했다. 이곳에 방문한 관람객들은 바닥의 화살표를 클릭해 한 걸음씩 이동하면서 주변에 설치된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게 된다. 작품의 상세 이미지와 간략한 설명만 볼 수도 있다. 왼쪽 하단의 버튼을 누르면 된다. 김 감독은 “실제 관람 동선에 맞춰 온라인 전시를 구성한 덕분에 더욱 실감 나는 전시가 됐다”고 말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온라인 전시는 한국의 미술 역량과 한국 작가들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2018년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온라인 전시 ‘코리안 헤리티지’에 이은 구글의 두 번째 한국문화 소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DMZ가 ‘호랑이 농장’ 돼야 한다고?
전시의 가장 앞부분에 등장하는 작품은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무제’다.

‘DMZ는 호랑이 농장이 되어야 한다.’ 그는 텔레비전 스크린 모양을 본떠 만든 일종의 원고지에 색색의 크레용으로 이렇게 썼다. 근거는 이랬다. ‘DMZ는 호랑이 농장이 되어야 한다. 첫째,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둘째, 생태 낙원을 유지하기 위해. 셋째, 침입자를 먹어 치우기 위해.’ 얼핏 보면 유치한 장난 같지만 ‘세계 예술계는 DMZ를 주목해야 한다’는 선구적인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었다.

스트리트뷰 형식으로 전시를 구성한 덕분에 조형 작품도 이모저모를 뜯어볼 수 있다. 이불 작가가 만든 작은 탑 ‘오바드 V를 위한 스터디’가 인상적이다. 2019년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초청을 받아 DMZ 철조망을 녹여 제작한 4m 높이 타워 ‘오바드 V’의 시제품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만든 설치작품 ‘새들의 수도원’도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그다음 온라인 전시관에서는 안규철 작가가 DMZ 철조망을 녹여 만든 ‘DMZ 평화의 종’을 주목하라. 작가는 “벽을 넘어서려면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벽을 부수려면 그것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DMZ에서 철거된 철조망의 잔해를 녹여 종을 제작했고, 벙커의 감시탑 형태로 종탑을 만들었다. 사람들을 갈라놓던 철조망이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 종소리가 된 것이다.

전시를 통틀어 아쉬운 점은 딱 하나. 실제 열렸던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종을 직접 울려볼 수 있었지만, 온라인 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당시 관람객들에 따르면 종소리는 짧고 둔탁했다고 한다. 동으로 제작하는 일반적인 종과 달리 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에게 아쉬움을 전하자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꼭 DMZ에서 전시를 열고 종소리를 직접 들려주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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